오늘 복음은 주님의 열 한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과 작별하던 현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더러 주님을 “의심”하는 이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세 해를 꼬박 제자들의 믿음을 위해 공을 들이신 주님 마음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누가 진심으로 “엎드려 경배”하는 ‘진짜’인지 속으로 의심하는 ‘가짜’인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십니다. 똑같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어서’ 아버지를 뵙고 싶어서 ‘빨리’ 아버지 집으로 갈 생각만 그득했던 탓이었을까요? 갈 길이 바빠서 ‘대충대충’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서둘렀던 것은 아닐까요? 평소라면 틀림없이 당신을 믿지 못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없느냐?”고 나무라셨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요?
흔히 믿음이 약해서 전교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교는 믿음이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완벽해지면 그 때에 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우리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믿음이란 그저 이 한 몸, 주님을 믿는 것으로 종칠 수 없는 절대적 사명이 부여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전교란 내가 잘나고 내 믿음이 좋은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 때문이라는 걸 깨우쳐줍니다.
그럼에도 세상에 주님을 알리는 일은 녹록치 않습니다. 솔직히 주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도 긴가민가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두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마음이 오락가락했습니다. 하물며 주님을 모르는 이들의 마음을 무슨 수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따져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쩌면 그날 주님 제자들의 마음도 지금 우리처럼 갑갑했을 것도 같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 세례를 주고 (…)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는 주님의 당부가 마음에 백배부담으로 다가왔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승천을 분명히 목격하였지만 도무지 변화되지 못하고 세상이 무서워 벌벌 떠는 못난 모습을 보였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사에 덜렁대던 겁쟁이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에 세상을 향해 외친 일성이 요엘의 “꿈”(요엘 3,1-3 참조)에 관한 예언이라는 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 꿈’을 꾸는 일이 곧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귀한 꿈과 거룩한 열정으로 참 생명을 얻은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꿈과 열정이 이웃을 향한 전교로 열매 맺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세례로서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끈끈한 정으로 엮여 있습니다. 아울러 주님 은혜로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보은의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전교는 하느님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는 세상에게 그분의 진심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분께로부터 받은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그분의 멋진 면면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소문내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랑이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 그분의 입이 되고 발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정녕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며 바라시는 꿈이며 고대하시는 소원입니다. 그런 까닭에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웃에게 주님의 참 사랑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마음의 변화마저도 주님께서 책임지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세상에게 당신을 알리고 당신의 뜻을 심어 줄 수 있도록 손수 도우실 것을 다짐해 주셨습니다.
전교주일, 전교란 상대의 반응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그가 감격하든 속으로 의심하든 상관치 말아야 한다는 점도 명심합니다. 전교의 핵심은 무조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 만큼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임을 깊이 새깁니다. 하여 주님과의 사랑이 더 다정하고 애틋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멋진 연인인지 온 세상에 자랑하기 위해서 주님과 더 진한 사랑을 쌓게 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탁월한 전교 방법은 내가 체험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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