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과 독서는 모두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증을 일러줍니다. 그 갈증은 주님을 향한 진실과 간절함과 확신으로만 해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럼에도 그날 바오로 사도처럼 철떡 같이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달랐던’ 상대방의 행위에 어리둥절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속이 부글댔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바보 같았으며 진짜로 멍청했던 못난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강론을 준비하려는 마음이 산산히 흩어져,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바오로 사도처럼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했던 ‘제 탓’이라는 것이 떠올라 절로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마음의 앙금을 털어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사무쳤습니다. 그 외로움, 그 쓰라림이 다시 돋아나는 듯 생생했습니다. 제2독서 말씀을 큰소리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함께 계셨던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헤아렸습니다. 문득 제1독서 말씀이 들려주는 ‘겸손한 이’의 기도 자세가 마음에 담겼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청원이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 믿음의 열정이라는 점을 깊이 새겼습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경제적 부요에 맞춰져 있습니다. 때문일까요? 모두가 재물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정의도 의리도 사랑도 이익계산의 목록일 뿐입니다. ‘손해’라면 질색이고 스스로의 감정마저도 손익으로 셈하기에 능숙합니다. 이런 세태에 그리스도인마저 오염되고 있으니 심각한 일입니다. 비상사태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지난 시대에 있었던 사상에 불과한 것처럼 폄하시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르시는 가난과 겸손의 ‘의미’를 머리로 알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버립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 세상이 열망하는 것까지도 모두 당신 자녀들에게 꽉꽉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겸손과 주님을 경외함에 따른 보상은 부와 명예와 생명”(잠언 22,4)이라고 명확히 일러주셨습니다. 이렇게 족집게 정답을 알려 주셨는데도 사탄의 ‘오답’만 달달 외워 실행하려 드니, 기가 막힙니다.
인간은 그분께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느낄 때,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행복을 우리는 오늘 바오로 사도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배웁니다. 설사 상대보다 수고를 더 많이 해야 하더라도, 지독히 억울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곁에 계신 주님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만납니다(2코린 11,23-33 참조).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12,10) 달갑게 여기는 사랑의 달인으로 변화될 것을 희망하게 됩니다. 솔직히 오늘 복음에서 듣는 건방진 바리사이처럼 살고자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뻔뻔한 기도를 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돌변합니다. 일일이 잘못을 따져서 상대의 코를 납작해 줄 궁리를 놓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내기까지는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며 마음의 응어리를 꽁꽁 묶어둡니다.
이 주간, 스스로의 신앙점수를 채점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바리사이가 되어 ‘세리처럼 살지 않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겨우 바리사이처럼 생각하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한, 결코 믿음의 우등생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몹시 나를 괴롭힌 그 ‘못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날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똑같이 평가하실 것이라는 점에 유념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아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능력과 힘으로 당신을 도우고 섬길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분께 도우심을 청하고 당신의 도우심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만 청하십니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일일이 코치하기 원하십니다. 이 소박한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분께 온전히 의탁함으로 우리의 매 순간이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기를 열망합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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