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전, 아버지는 논에 일하러 가실 때면 꼭 경운기 옆자리에 태워주시곤 하셨다. 산에 둘러싸인 논이었기에 놀거리가 많았다. 논일이 끝나고 경운기와 트레일러를 결합시킬 때 고리를 끼워 드리는 것이 종일 놀고 난 나의 몫이었다. 농약을 칠 때 농약이 나가는 레버를 열고 경운기 속도를 높여 잘 나가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 능력자 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우였다.
통일에 대한 큰 역할은 나라에 있을 것이다. 더불어 교회에 주어진 역할은 고리를 끼워주고 레버를 열고 속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닐까. 작지만 결정적인 역할이 교회에 요청되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갖추어야 할 나름의 준비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구는 1996년부터 본당 예산 2%를 적립하고, 1%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주일에 적립하는 방법으로 통일을 준비하기로 결의했다. 많은 지지, 반대가 동시에 일어났지만 잘 진행되던 통일통장은 지금 완전히 정지된 상태다. 서독천주교회는 동독천주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며, 통일을 준비했기에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도 갈라진 이들을 하나 되게 하는 교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교구의 미래와 함께 민족의 미래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고귀한 뜻이 그대로 유지되고 진행되기를 바라면서, 통일까지 이어질 통일통장을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만이라도 지속하려고 한다.
한국천주교 사목지침 200조는 ‘북한복음화는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 통일에 대비해 북한 교회의 부흥과 북한 동포의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역량을 갖추는 교회의 활동을 말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배려와 북한 지원, 통일 후 비용을 준비하는 모든 분야가 균형 있게 준비될 필요가 있다. 통일통장은 미래를 바라보는 교구의 훌륭한 선택이었고, 지속적 진행이 요청된다.
현실 준비가 배제된 미래에 대한 메시지는 의미가 없다. 통일을 말하고, 북한 인권을 말한다면 우리는 실제적 준비에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러한 교회의 다짐과 선포는 큰 의미가 있다.
교구 설정 50주년 감사미사의 예물봉헌 행렬에 서 있는 북한이탈주민 부부를 바라보며 교회의 구성원으로 함께하는 그들의 역할이 기대된다. 북한복음화를 위한 작지만 결정적인 역할이 그들에게 주어지고 그들은 그것을 기쁘게 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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