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은 세상의 버림받고 소외된 이를 찾으시고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목숨마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이다.
교구는 교구 설정 50주년의 희년과 신앙의 해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섬기는 삶을 함께 걷고자 ‘잘 섬기겠습니다!’ 영성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창간 6주년을 맞아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생명을 섬기는 현장을 찾았다.
“하느님을 섬기는 수도생활의 바탕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바탕이 돼야, 하느님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굳건하게 실천해나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지난 17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하루 일과를 마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총원장 구영신 수녀) 본원 수녀들이 성체현시와 함께한 끝기도를 위해 피정의 집 1층 성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대침묵의 시작을 알리는 기도가 시작되기 전, 피정의 집 담당 양인숙 수녀가 나직이 이야기를 건넸다.
하느님과 더 가까이 만나고자 절제와 수도의 공동체의 삶을 택한 수도자들에게는 굳건한 믿음의 바탕 위에 말씀을 읽고 기도 안에서 그 뜻을 헤아려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수도생활의 근간이라는 것.
“무엇보다 ‘말씀을 어떻게 살아나가는가’ 하는 것이 우리 수도 공동체가 가진 소명이지요. 말씀으로부터 가난과 겸손으로 기도하고, 노동하는 삶. 그것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우리 수도자들의 몫입니다.”
그 의미를 잘 알기에 수녀회의 수녀들은 이른 새벽 성무일도와 함께 하루를 여는 동시에 성경을 낭독하고, 침묵 중에 되새기며 사도직 활동 가운데 말씀을 생활화하는 살아있는 수도생활을 꿈꾼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해가 일찍 지고 캄캄하지만 수녀원 내 건물들은 이동에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소등 상태다. 이는 가난과 검약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수녀들의 뜻이다.
“수녀회 세습 자산 중 가장 첫째가 복음적 청빈의 삶입니다. 그 일환으로 수도생활 중 물적 청빈의 삶을 실천하고 있지요. ‘흐르는 물도 아껴라’고 말씀하셨던 창립 신부님의 청빈의 삶을 가까운 것부터 실천하고자 전기 절약에 힘쓰고 있어요.”
공동체 안팎으로의 사도직 활동 역시 하느님을 향해 심신을 수련하는 수도생활의 일부. 수녀회는 각 지역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본원에서는 성소부, 협력회(제3회), 홍보부, 전례부, 역사 담당을 두고, 피정의 집을 운영하는 것 외 수공예를 통한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수녀들이 직접 텃밭에서 율무를 재배하고, 수확한 알곡을 모아 묵주를 만든다.
“율무를 기르고, 삶고, 구멍을 내고, 다듬는 등 율무 묵주를 만드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하는 작업이라는 점과 동시에, 기도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율무 묵주를 오래 내버려두면 그 안에서 벌레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어느 신부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말씀하시더군요. 율무가 벌레가 나비로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지요. 율무가 가진 자연의 색깔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 율무 묵주를 통해 생명의 신비도 함께 느끼는 것 같아요.”
까맣게 익어가는 율무를 따는 수공예 사도직 담당 장영자 수녀와 성소부 정오남 수녀의 손이 바쁘다. 텃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동안 장 수녀의 앞치마 주머니 속에 생명의 알곡들이 가득 찼다.
묵주를 만들며 작은 낱알을 하나씩 꿰어가는 수녀들의 손놀림에도 하느님이 주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배어 있다.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간의 총회를 마치고 난 후 여유를 찾은 양 수녀가 잠시 수녀원 화단에 눈길을 돌렸다. 양 수녀는 아이 같이 맑은 얼굴로 화단의 식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모처럼 수녀원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만끽하고, 매일 직접 기른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가족 같은 공동체 식구들과 둘러 앉아 식사를 나누는 것 역시 수녀들에게는 하느님의 피조물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공동의 수도생활에서 같은 피조물인 동료들과 나누고, 배려하는 ‘형제애’ 또한 수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 수녀원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 마다 수녀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무른다. 서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잦은 ‘대화’의 여유도 공동체 생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수도자들이 함께 모여 나자렛 성가정을 닮아 사는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우리 수도생활의 목표이지요. 현실의 삶에서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근접한 삶을 살아가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오후 8시를 훌쩍 넘긴 시간, 하루 동안 동료들과 어울려 사도직 현장에서 하루를 보낸 수녀들은 다시금 침묵 중에 하루 간 품어둔 말씀을 음미하고, 하느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대화를 통해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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