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교구청지하 교리실에서 주회합을 하는 레지오 쁘레시디움이 있다. 정성된 기도소리에 여느 쁘레시디움과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지만 이 쁘레시디움은 조금 다르다. 이 쁘레시디움은 교구 ‘하늘의 모후’ 레지아 직속 ‘하늘의 여왕’ 쁘레시디움,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구성된 쁘레시디움이다. 이 쁘레시디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섬기는 김영숙(아녜스·61·안양대리구 과천본당)씨를 만나봤다.
“섬긴다는 게 말은 쉬운데…. 높은 사람은 제가 섬기지 않아도 대우를 받잖아요. 누구나 서로 찾으려하고. 그런데 소외된 곳은 그렇지 않아요. 소외된 곳을 찾아 섬기는 게 정말 섬기는 게 아닐까요?”
본래 레지오는 3년 이상 간부를 맡을 수 없다는 규정이 있지만 김씨는 2007년부터 단장과 단장 연임, 지금은 회계를 맡아 7년째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4명의 간부들의 사정은 비슷하다. 3만 명이 넘는 단원들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이 쁘레시디움에서 간부를 맡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주 회합마다 모이는 시각장애인들을 안내하고 돕는 봉사도 해야 했고 매주 회합을 위해 교구청을 방문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이런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로 지난 교구설정 50주년 신앙대회에서 사회복음화분야 상을 받기도 한 김씨였지만 소감을 묻자 “다른 분들이 더 훌륭한데 상을 받게 됐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김씨 역시 처음부터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막막했지만 막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편견을 없애니 대하는 것에 힘들 것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제가 이분들을 섬겼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분들에게 섬김을 받고 있어요. 제가 받은 게 더 많죠. 특히 이분들은 항상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비장애 신자들보다도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단원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다. 방문선교는 하지 못하지만 전화선교만으로도 해마다 4~5명씩을 꾸준하게 전교하고 있고 묵주기도에 열심해서 어떤 사람은 한 주에 묵주기도 1000단을 바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간부와 봉사자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모습에서 일방적인 섬김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사이가 됐다.
김씨 이외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은 소외된 곳에 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뿐 아니라 외부로 나가려면 눈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본당에서 활동하고 싶어도 도와줄 이가 없어 본당을 갈 수 없다. 본당에 도울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분들도 다 중도실명자예요. 눈이 보이지 않는 불편이 생겼을 뿐이에요. 편견을 갖지 않고 허물없이 대하면 어려울 것이 없어요. 더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고 봉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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