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밖에 서있는 분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랑으로 대해주세요. 봉사자님들 사랑으로 배식해주세요. 설거지도 사랑으로 해주세요.”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오블라띠수도회)가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저녁을 제공하기 전 봉사자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한다. 봉사자들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배식을 준비한다. 잠시 뒤 오후 4시30분이 되면 배식이 시작된다. 벌써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200명을 넘었다.
“제가 식판 들어드릴게요. 자리로 가세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어르신을 위해 봉사자가 대신 식판을 든다. 국에 건더기 양까지 확인한 봉사자는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한 후 다시 다른 노숙자를 향해 다가간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배식 봉사 이외에도 2명의 봉사자가 배치됐다. 잔반 처리를 돕는 이도 따로 배정됐다.
“거기 형제님 맨 뒤로 가세요. 새치기는 안 됩니다.”
슬쩍 줄에 끼어들어가려던 노숙자가 눈에 띄자 김 신부가 소리친다. 안나의 집을 찾는 모든 이들을 미소로 맞이하는 김 신부지만 이럴 때는 영락없는 호랑이다. 사실 지금 줄 서있는 사람들은 거의 2시간 전부터 기다렸다. 그리고 배식은 시작됐지만 금방 식당이 가득 차 먼저 식사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때까지 앞으로도 몇 분을 더 기다려야한다. 이런 상황에 새치기는 자칫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끔 여기 오신 분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기도 해요. 아무래도 좋지 않은 환경에 살고 계신 분들이다보니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죠. 술을 드시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저 여기 찾아온 분들 중에 몇몇 분들이 나쁜 길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아프고 힘들죠.”
안나의 집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인국(비오·63·서울 문정2동본당) 시설장에게 봉사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김하종 신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둘 다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그들의 바람도 같았다. 바로 안나의 집을 찾는 모든 이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다.
“흔히들 봉사를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에요.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어요. 반대로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일이지 봉사가 아니에요.”
배식을 하던 김 신부가 국그릇에 반찬과 밥을 조금 퍼서 담더니 한 쪽 구석으로 가서 먹기 시작했다. 그게 그의 저녁식사다. 노숙자들에게는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편안하게 배불리 먹게끔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시간에 쫓겨 가며 서둘러 밥을 먹는다.
“여기서 일하는 분들은 다 천사예요. 잘 찍어주세요.”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를 발견한 노숙자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말했다. 배부르게 먹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처음 만난 이들에게도 반갑게 인사하며 나가는 노숙자들에게 안나의 집이 어떤지 물어봤다.
“밥맛이 아주 좋아. 정말 배부르게 잘 먹었어.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이 고생이 많지. 뼈다귀도 좋은 걸로 구해다가 아주 맛있게 잘 해주셔”
오늘 하루 식사를 모두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 이정우(79)씨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있는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서둘러 일을 하러 가야했다. 아들 생각을 하니 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이씨는 그나마 무료 급식소들이 있어 밥은 굶지 않는다며 연신 김 신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안나의 집은 단순히 밥만 주는 곳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곳입니다. 새롭게 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1998년 7월에 설립된 안나의 집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을 예수님 같이 섬기고 있다. 법률뿐만 아니라 실업, 심리, 신앙상담과 의료봉사도 행하고 있다. 일자리를 원하는 노숙인에게는 쇼핑백 접기나 공공근로와 같은 일자리도 연계해주고 있다. 또한 위기에 처한 불우아동·청소년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오늘도 안나의 집을 찾은 노숙자들에게 봉사자들은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도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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