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스라엘이 아닌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故) 운보 김기창 화백(베드로· 1913~2001)은 60여 년 전 이러한 상상을 화폭에 옮겼다. 운보의 붓끝에서 재현된 예수는 영락없는 조선시대 선비의 모습이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가 세례를 받고 설교를 하며 병자들을 고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부활한다. 모든 작품은 마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
예수의 생애를 한국적인 성화(聖畵)로 그려낸 운보의 작품을 17일부터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운보 김기창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된 ‘예수와 귀먹은 양’을 통해서다.
전시에는 운보의 주요 걸작 ‘예수의 생애’ 연작을 비롯해 민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바보산수와 청록 빛의 강렬한 채색풍경이 돋보이는 청록산수, 전통적 동양화의 채색화법의 풍속화 등 운보의 다양한 활동경향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다수 공개된다.
‘예수의 생애’는 성경의 내용을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종교미술사와 한국 회화사에서 독창적이고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운보는 예수의 고난이 우리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해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적 성화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예수의 성체가 꿈에도 보이고 백주에도 보였다” 할 정도로 성화 제작에 몰입해 1년 만에 30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막내딸 영이 수녀(사랑의 선교 수녀회)가 되면서 1985년 천주교로 귀의한 운보가 생전에 사용했던 화구, 성물, 생활용품 등 100여 점에 달하는 물품들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11월 2일 오후 2시에는 미술평론가 서성록 교수(안동대 미술학과)의 무료 초청강연회가 열린다.
서성록 교수는 “예수의 탄생과 공생활, 죽음과 부활을 중심 주제로 삼음으로써 김기창은 예수의 전 생애를 통해 보여준 인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며 “김기창은 올 것 같지 않았던 평화를 예수 일대기를 그림으로써 소망했고 하루라도 속히 그날이 오기를 희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예수의 생애’의 배경이 한국의 토속적인 향리풍경이며 그 속에 점경인물로 나타난 예수를 보며 보다 친근한 느낌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시 제목인 ‘예수와 귀먹은 양’은 어린 시절 열병으로 인해 청각을 잃은 운보가 침묵과 고독의 세계를 이겨내고 종교적인 신념과 자유로운 조형정신으로 동양화의 혁신을 이룬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전시는 2014년 1월 19일까지 진행된다. 성인 9000원, 초·중·고교생 7000원.
※문의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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