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기자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무모하게 텃밭에 농작물을 재배하겠다고 나선 것. 손재주 없기로 유명한 기자의 도시농부 체험은 실수투성이였다. 재배하는 작물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뿐더러 농부로서 모든 행동들이 서툴렀다. 농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농부였다. 하지만 농작물은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기자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도시농부의 조건’을 끝내면서 기자가 체험한 작은 깨달음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자연과 교감해야 진짜 ‘농부’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의 일상 중에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흘러가는 계절을 인식했다. 올해는 자라나는 작물을 보며 계절을 느낀다. 벌써 10월 중순, 가을이 완연하다. 홍대 다리텃밭에서는 곧 다가올 ‘겨울나기’ 준비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한 것도 없이 작물들과 무사히 한 해를 보낸 듯해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도시에서 흙을 만지고, 씨앗에서 움트는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신비롭게 느껴졌다. 또 하나의 신비는 자연과 사람이 교감해야 좋은 작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햇빛과 비라는 좋은 자연 거름이 있지만 무성하게 자란 잎을 솎아내고, 알맞게 익은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농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퇴비를 만들고, 뿌려주는 것도 농부의 몫이었다.
직접 농부가 되고 나서야 ‘진짜’ 농민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달았다. 자식 같은 농작물 앞에서는 게을러서도 안 되고, 바쁘다는 것도 핑계에 불과했다. 게으른데다 바쁘다는 핑계를 밥 먹듯이 내세운 기자의 뿌듯함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혹독한 추위가 예고된 이번 겨울을 보내고 나면, 건방지게도 다시 한 번 텃밭 농부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농부로 거듭나기 위해.
작은 수확, 큰 감동
상추, 가지, 노각이 되어버린 오이 등 작은 텃밭이 그동안 준 기쁨은 컸다. 가족들과 둘러 앉아 직접 재배한 채소들을 먹고 있자면, 먹지 않아도 배불렀다.
마트에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장바구니에 담았던 ‘그냥’ 채소가 텃밭에서는 ‘생명’을 품은 채소가 됐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이다.
솔직히 시중에서 판매하는 채소보다 모양도 작고 못생겼다. 하지만 농부의 사랑이 첨가돼 맛 하나는 세계 최상이다. 몇 개월 품은 작물도 초보 농부 눈에는 이렇게 예쁜데, 아들까지 내주면서도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을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도시텃밭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최근 텃밭을 분양하는 단체가 늘어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집 베란다나 옥상에서도 나만의 작은 텃밭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성실함만이 좋은 수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작은 텃밭을 통해 ‘농부이신 하느님’(요한 15,1)을 닮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도움 주신 단체 :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소년문화사목부,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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