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 살면서 만나고 헤어진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래도록 마주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예수님과 첫 대면을 하게 된 자캐오를 생각하며 문득 내 삶이 엮어내고 있는 하 많은 관계가 떠오릅니다. 그리움을 담아 바오로 사도처럼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진한 기도를 담아 제 진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소통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합니다. 손 안에 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일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모두 외롭답니다. 누구와도 통하지 않는답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답니다.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공허감을 감추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눈만 뜨면 벌어지는 세상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곁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진정한 관계가 아닌 소유의 극대화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소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 세상 핑계를 합니다. 달라진 세상 탓이라는 토를 답니다. 타락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오직 자신의 소유를 극대화하려고 하느님을 이용하려했던 카인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사랑의 관계로 꾸려가라는 하느님의 뜻을 외면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카인처럼 하느님을 떠나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창세 4,12)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스스로의 장애를 딛고 도전했던 자캐오의 모습이 몹시 귀했던 까닭이라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모시고 선한 일을 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날 자캐오처럼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총을 얻었습니다. 자캐오를 변화시키신 주님 사랑은 오늘 우리 안에도 고스란히 주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강합니다. 사랑을 하면 상대를 알고 싶고 닮고 싶어집니다. 특히 하느님과의 만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주님과의 사랑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관계를 통하여 자아를 고귀하게 실현해 가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힘으로 이웃과 사회에 덕을 끼치는 존귀한 빛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순수한 ‘사랑’ 이십니다. 어떤 것도 가미되지 않고 어떤 것과 섞일 수 없는 사랑 자체이십니다. 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오직 살리는 일에만 사용하십니다. 이기고 군림하려는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 극과 극의 차이를 살피지 않고 예수님을 단지 상대를 이기고 이웃에게 군림하기 위해서 사용하려 든다면, 하느님을 이용하려 했던 카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소유에만 골몰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손익으로 따지는 피폐한 삶을 영위한다면 주님이 계시지 않는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독한 삶에 갇혀 지내는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캐오처럼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며 움츠러들던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카인처럼 사랑을 잃고 헤매이는 우리에게 그날 자캐오처럼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가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을 만나 주님의 사람이 되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매일이 기쁜 잔치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매일 주님께 자신의 하루를 보고하는 것만으로 신바람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해서 상대가 기뻐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고 오늘 용서한 마음자락을 보여드리며 자꾸 솟구치려던 욕심을 깡그리 꺼내드리는 시간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할 것을 약속하는 마음이 즐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삶이 자캐오처럼 변화되어 주님께 기쁨을 선물하기 원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세상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사랑으로 기도하는 우리이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 모두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니다.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시려는 당신 사랑을 깨달아 주님의 꾸지람마저도 달게 여기는 귀한 믿음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당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의와 믿음의 행위를 당신 힘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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