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신앙실천 반성의 체계화다. 하느님 말씀을 해석, 이해하는 인간적 노력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며 해석의 영역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전환이다.
통일신학은 남북한 체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삶에 적용된다. 예수님께서는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며 모든 것에 통합과 통일을 기도해 주셨다. 통일은 획일적인 하나가 아니다. 다양성, 개성이 없으면 폭력적일 경우가 많다. 뜬구름 잡는, 구호성 통일은 획일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그 주장을 하는 이들의 삶과 깊은 일치를 이루기 힘든 경우가 많다.
더 깊이 일치를 향한 삶을 추구하며 남북한 통일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바라는 남북한, 남남, 지역사회, 가정, 개인 일치도 가능할 것이다. 통일을 위한 교회와 구성원들의 구체적 역할을 바라본다. 한 신학자는 남한의 그리스도교가 서양문화와 자본주의 정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에 북한 그리스도교인들과 더불어 북한의 반그리스도교적 무신론을 극복하게 될 것으로 봤다.
서로 대립하고 자기주장을 폭력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이 확산되는 지금, 과연 우리가 꿈꾸는 통일은 가능할까? 자기주장에 갇힌 이들은 통일신학조차 지엽적·정치적인 것으로 바라보니 안타깝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돼 외세에 의해 포로 생활을 했을 때, 예언자들에 의해 형성된 통일신학은 평화, 정의 두 측면에서 전개됐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평화는 폭력이다. 양측 분단 원인을 성경에서는 증오, 적대감으로 보고 있다. 현재 남북한 분단 원인도 여러 가지겠지만 증오와 적대감이 간격을 더 벌리고 있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신앙 속 근본을 회복하는 통일신학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며, 구체화, 현실화하는 것뿐이다.
공산주의는 극복돼야 하고, 민족의 하나 됨은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 우리는 평화, 정의가 살아 숨 쉬는 통일을 지향한다. 자유, 인권이 보장되는 삶이 하나 되길 바라신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교회와 구성원은 한반도의 불을 제거하기 위해 영성적 투신과 정통적 가르침을 구체적 실현해야 한다.
참된 영성생활은 먼저 올바른 교리 지식에 뿌리를 둬야 한다. 올바른 실행(orthopraxis)이 올바른 교리(orthodoxy)와 서로 연결돼 있는 것과 같다. 말과 행동이 하나 되신 분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교회는 이러한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다.(주교회의 200주년 대희년 길잡이, 1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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