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가 전하는 이야기는 읽을 적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일곱 아들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차례차례… 아들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현장을 목격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감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하는 것조차 죄송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아들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으니, 참으로 믿음의 대장부라 여기게 됩니다. 그와 대비하니 주님을 찾아와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시비를 걸고 있는 사두가이들의 모습이 더욱 눈꼴사납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서… 어디서부터 어긋 낫기에… 그 훌륭한 믿음의 후손들이 저렇게 엉망으로 망가진 것일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으십니다. “하늘나라를 알기나 하느냐?”고 면박을 주지도 않으십니다. 자상하게 천국의 신비를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탄생 그 너머에는, 지상의 부모님을 넘어선 그곳에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십니다.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의 원천이며 내 존재의 근원이라는 진리에 다가서도록 이끄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믿고 주님의 승천을 믿고 살아가는 부활신앙인입니다. 세상에 오신 주님을 푸대접하며 트집을 잡던 바리사이나 사두가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욕심에 눈이 멀어 보이는 것들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일에는 소홀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이렇게 악한 영의 ‘거짓과 위협’에 매수당하고 지냅니다. 나를 이용하여 생명을 ‘파괴’시키려는 사탄의 농락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탄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교우들이 바치는 기도가 가장 큰 방패가 된다는 사실을 숙지하게 됩니다.
‘진리’와 ‘거짓’은 쉬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오로마저도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라고 탄원하였습니다. 결국 매일 매 순간에 깨어 있는 일,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1코린 10,12) 하는 것 밖에는 뾰족 수가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조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럼에도 사탄은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들쑤시며 수시로 남의 잘못을 들추도록 합니다. 또 스스로 죄책감에 빠져들어 괴로워하게 합니다. 지난 일을 후회하며 자책에 시달리는 것도, 선한 행위에 적극적이지 않은 탓에 벌을 받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모두 악한 영이 주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죄다 사탄의 공갈과 협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사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 형제들을 고발하는 자’(묵시 12,10)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듯 조잡한 죄를 조장하고 얽어매어 괴롭히는 힘은 결코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 하느님은 결단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거창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음으로 때로 바리사이처럼 주님의 일을 비웃더라도 내치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굳어져 사두가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이론으로 주님께 대항할지라도 꾸짖지 않으십니다. 다만 아주 조금씩, 우리의 지혜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도록 도우십니다. 우리 삶이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새로워지도록 힘을 주십니다. 앞날이 막막하여 낙담하고 절망하며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부모에게 자녀들이 소중한 것처럼 하느님께 우리 모두는 태초부터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분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애를 쓰거나 그분께 더 소중한 존재가 되려고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고 격려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하늘로 부르십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도록 응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탄생과 죽음의 신비를 압니다. 그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심정을 압니다. 그리고 좋으신 예수님과의 해후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는 정말로 그분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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