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녀님이 휴가 때 했던 체험입니다. 막내 동생 수녀님이 왔다고 둘째 형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큰 언니, 둘째 언니, 셋째 언니, 그리고 셋째 언니의 초등학교 1학년 늦둥이 딸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답니다. 가족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도중, 형부가 ‘지금 차가 있으니, 다 함께 어디를 좀 갔으면 좋겠는데, 어디가 좋을까?’하고 제안하자마자, 수녀님은 곧바로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답답한 대도시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수녀님은 어릴 때부터 즐겨가던 흰 포말이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래서 다함께 역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려, 고즈넉한 가을 바닷가로 갔답니다. 조금은 쌀쌀한 바다 바람이었지만 끝없이 펼쳐진 자갈들이 ‘싸르륵, 쏴’하며 파도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수녀님으로서는 너무나도 오랜만이라, 그리고 자갈들이 유난히 수녀님을 반기는 듯하여 모처럼 크게 깊은 숨을 내쉬었답니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고 사람 때문에 지쳐있었기에, 맑은 바다 내음이 허파 깊숙이 들어오는 그 상쾌함에 모든 감정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답니다.
그때 늦둥이 조카가 바닷가에 있는 자갈 몇 개를 주워가지고 수녀님에게 달려오더니, “이모, 돌고래를 찾았어요, 돌고래. 그리고 이건 스마일 귀신이구요, 이거는 음, 밤이에요” 하며 돌 하나 하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설명 해주더랍니다. 그런데 조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단지 자갈들이 자갈만이 아니라 돌고래로 스마일 귀신으로 밤으로 보였답니다. 이모로서 조카의 상상력을 칭찬해 주다가 문득 수녀님 자신도 예쁜 모양의 자갈을 찾아보는 것이 재미있겠다 싶어 다른 언니들과 함께 발 앞에 펼쳐진 수많은 자갈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건질 것 있는 형상’의 자갈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답니다.
‘어디 보자, 돌고래라…, 그럼 원숭이나 다른 동물들은 어디 없나?’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도, 그 많은 자갈 속에서 제대로 된 형상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어린 조카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이 돌 저 돌을 살펴 어떤 모습을 찾으면 이내 곧 수녀님께 뛰어와서 “이모, 이건 성모님이고요, 이것은 나비 날개구요, 또 이것은 이히히, 꿀돼지 코에요, 코!”
자갈밭에서 수많은 자갈에 의미를 담는 조카를 보면서, 수녀님은 한 순간 크게 깨닫게 되었답니다. 수녀님이 자갈에서 형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상상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면서 편안한 관계에 익숙해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나비는 나비의 분명한 문양이 있어야 하고 돌고래는 돌고래의 형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하고 스마일 귀신은 스마일 귀신의 모습을 정확히 하고 있어야 그것을 인정할 수 있었답니다.
다시 말해 수녀님은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 ‘완전하고 완벽한 모습’, 즉 제 꼴을 갖추고 있어야 그것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답니다. 한 마디로 ‘이런 모습은 이것이어야 한다’는 머릿속 고정 관념과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제대로 일치할 때, 비로소 올바른 것이고 제대로 된 것이고 정확한 것이라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발견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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