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양성하면서 여러 잊지 못할 사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0년 9월 2일 총장 취임식이었다. 취임에 앞서 총장직에 대한 중압감이 밀려왔지만, 옆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 사제들과 든든한 기도 부대(?)가 있기에 앞으로 있을 어려움들은 주님의 안배에 맡기기로 했다.
총장직 수행의 어려움은 취임식에 불어 닥친 ‘곤파스’라고 명명된 태풍으로부터 예견됐다. 취임식 전날 기상예보에 따르면 태풍이 남부지역을 거쳐, 취임식 당일 오전 경기지역을 강타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개인적으로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척 했지만, 취임식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취임식 걱정으로 밤새 뒤척거리다가 새벽녘에 일어나 신학교 정원을 돌아다보니 신학교는 마치 작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처참했다. 취임식을 앞두고 보수한 대성당 지붕의 기왓장은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흩어져 있었고, 도서관 정면에 걸어둔 큰 걸게 그림은 반으로 찢어져 있었다.
태풍으로 인해 아름다웠던 신학교 정원이 흉물스럽게 변했지만, 한편으로는 태풍이 기상예보와 달리 미리 경기지역을 빠져나가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태풍이 예상시간 그대로 불어 닥쳐 취임식에 방문한 하객들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글을 빌어 새벽녘에 나와 신학교 정원을 말끔하게 정비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해준 동료 사제들과 직원분들, 그리고 함께 자리를 해 주시고 멀리서 마음을 같이 해준 분들에게 깊은 인사와 감사를 드린다.
태풍은 우리 인생사에 있어 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불어오기에 항상 철저한 대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태풍은 상처만이 아닌, 희망의 씨앗도 동반하기에 일종의 양면의 칼날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총장 취임식이 끝나고 맑게 갠 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우리 신학교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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