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아이는 현재 하고 있는 대학전공이 자신의 인생 계획과 맞지 않는다며 새로 대학입학을 준비하려고 한다. 하루는 이웃 신자분과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의학 분야를 전공하고 싶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대뜸 ‘그 아이 세례명을 루카라고 하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하셨다. 왜 꼭 루카를 추천하느냐고 묻는 나에게 ‘루카 사도가 내·외과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라며 성인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평소 수호성인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지만, 수호성인이 나를 도와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저 내가 본받고 싶은 모습의 성인을 수호자로 세울 수 있다고만 알았던 것이다.
그리곤 신자분은 가방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시더니 여러 성인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펜던트를 여러 개 꺼내셨다. 성지순례를 다니시면서 모은 귀한 것이라고 한다. 각 성인의 펜던트를 보면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 성인에게 전구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셨다.
‘이런! 가톨릭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나? 교리시간에도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라고 배웠는데, 성인들에게도 기도하면 그들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게다가 그분의 행동은 어쩐지 여기저기에 가서 비는 우리 할머니의 기복신앙, 정령숭배의 모습과 좀 닮아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교리시간에 성인 공경은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완전하게 한다고 배웠다. 성인들의 생활에서 모범을 찾고 통공에서 일치를 찾고, 전구에서 도움을 찾는다는 설명도 들었다. 또한 성인 공경을 교회가 공인하고, 필요한 절차를 마련해 장려하지만 신자들의 필수적인 의무로 선포하거나 규정한 적은 없다고도 들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성인 공경이 남용되지 않도록 당부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었다고 했다.
성인의 펜던트를 무슨 힘이 있는 신물처럼 여기거나, 성인의 기념일을 주일이나 다른 전례보다 더 강조하는 것 등은 잘못된 행태인데, 그 신자분뿐만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성지순례를 지속적으로 다니시는 신자들도 펜던트를 모으는 게 목적인 분들이 많다고 들으니 좀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기복적 행동과 성인 공경을 하는 자세 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나에게 본당 신부님께서 좋은 답을 찾아주셨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이라고 하셨는데 나에겐 좀 어려웠지만, 몇 번 읽으니 나 혼자서가 아니라 성인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마땅한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유일한 구속주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은혜를 얻고자 우리가 간절히 그들을 부르고 그들의 기도와 힘과 도움에 의지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 우리가 천상 형제들에게 보인 사랑의 모든 진정한 증거는 바로 그 본질에서 ‘모든 성인의 월계관’이신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그리스도에게서 끝나며,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성인들 가운데에서 놀라운 일을 하시고 그들 안에서 찬양을 받으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하느님에게서 끝나는 것이다.”(교회헌장 제7장 5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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