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및 부제서품을 앞둔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주일 동안의 서품 피정을 마친 다음 피정 지도 신부님과 자유롭게 담소를 나눌 때였습니다. 그때 피정을 지도 신부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수사님들에게 좋은 정보 하나 알려드릴게요. 서품식 때 성인호칭기도를 하는 동안 가장 낮은 자의 모습, 가장 겸손한 자로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제단 앞에 완전히 엎드리잖아요!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요. 그러니 지금부터 하느님께 드릴 소원 하나씩을 만들어 보세요. 혹시 지금 기도 지향을 가지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그러자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우리 수도회가 하느님 뜻 안에서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할아버지 수사님들이 영육 간에 건강했으면 한다’ 등의 말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한 분 수사님은 그저 가만히 눈만 감고 있기에, 옆에 있는 수사님이 툭 치면서 할 말이 없느냐 물었더니, 그 수사님을 눈을 뜨면서, “신부님, 정말 간절하면 하느님이 그 소원 들어주실까요?”
그러자 신부님은 큰 소리로 웃으시며, “하느님 안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안 되는 일이 있겠어요!”
이 말을 듣자 수사님은, “종신 서원 때랑 부제서품 받을 때 성인호칭기도를 하잖아요. 사실 그때에도 저는 나름대로 간절히 기도는 했는데…. 음, 하느님은 내 기도를 잘 안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서품 때는 과연 가능할까요?”
순간, 모두가 다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무슨 기도를 드렸기에!’ 그러자 피정 지도 신부님부터 긴장한 나머지, “혹시 무슨 기도를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무척 겸연쩍어하던 그 수사님은 벗겨짐이 진행 중인 넓어진 이마를 보여주면서, “머리카락 다시 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거든.”
아, 겉으로는 표시가 잘 안 났지만, 탈모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수사님은 처음엔 머리카락이 안 뽑히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그 후에는 뽑힌 머리카락이 다시 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고, 그러다 요즘은 과학의 힘을 빌려 머리카락이 다시 나는 신약이 개발되기를 기도하고 있답니다. 그 수사님의 바람에 간절함이 묻어 있어, 웃고 싶은데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답니다. 표정에 비장함까지 묻어 있어서 감히.
그래요, 성직자나 수도자라고 해서 간절한 기도의 내용이 ‘세상을 위한 위대한 기도’나 혹은 ‘완전한 이타의 마음이 담긴 기도’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단지 머리카락이 나고, 무좀이 낫고, 코골이가 멈추고, 등짝에 손이 안 닿는 부분의 ‘간질간질한 곳’의 가려움증이 가라앉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간절한 기도, 아니 소박한 기도로 인해 낫기 시작하고, 거기서 느껴지는 ‘작고 소중함에 대한 깊은 감사의 체험’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세상을 향해 보다 깊이 투신할 수 있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수사님의 빠져나가는 머리카락 자리에서 진심, 새순이 나길 함께 빌어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주변의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마음 잊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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