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과정 전후 교황청의 역할을 깊이 있게 연구해 온 허동현(스테파노)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50년 전인 1963년 12월 11일 한국과 바티칸의 외교관계 수립을 “교황청이 광복 이후 한국교회가 성취한 발전을 감안해 내린 조처였다”고 말했다.
허동현 교수는 정식 수교 시점과 관련, 1947년 초대 교황사절로 방 파트리치오(Patrick J. Byrne) 주교가 부임한 이래 1962년 제5대 교황사절 안토니오 델 쥬디체(Antonio del Giudice) 대주교까지 5명의 교황사절이 파견돼 한국에 주재했지만 정식 외교관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1962년 신자 수 53만 명을 돌파한 한국교회의 위상을 고려해 교황청은 그해 3월 10일 한국을 종전의 선교지에서 자립능력을 갖춘 정식 교구로 승격시켰고(교계제도 설정) 이듬해 한-바티칸 수교 역시 교계제도 설정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이승만 정권 시절 교계신문이던 경향신문이 폐간되는 등 탄압을 경험했던 한국 천주교회 상황에서 교회 탄압을 막으려는 교황청과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시 외교무대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교황청의 지지가 필요했던 5.16 군사정부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한-바티칸 정식 외교관계 수립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주장했다.
한-바티칸 수교 50주년의 의의에 대해 허 교수는 “교황청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를 넘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우뚝 섰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 같은 성직자들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뒷받침해 준 든든한 원군이었다”고 평했다. 또한 분열과 충돌,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교황청을 대표하는 주한교황대사관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화해와 사랑의 소명을 지원할 표상으로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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