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첫주에 우리는 기쁘고 복된 성탄을 맞이하고자 다짐을 했습니다. 판공성사도 잘 준비하고, 자선, 봉사 활동을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늘 대림 제2주일을 맞이합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다짐했던 마음이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의 이런 습성을 잘 아시고,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다시 한번 저희 마음을 다독여 주십니다, 참 고마우신 하느님!
세례자 요한의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말씀을 들으면, ‘어쩌지, 나 아직 준비 안 되었는데. 무슨 낯으로 하늘 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뵙지!’ 하면서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의 기운 찬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위로와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 나라에 다같이 들어갈 수 있는 날이 오고 있으니 어서 준비하고 맞이하십시오.” 라고 요한이 우리를 격려하는 듯 합니다.
요한이 우리에게 희망을 실어 들려준 하늘 나라란 어떤 곳일까요? 늑대는 늑대끼리, 새끼 양은 새끼 양끼리, 가난한 이들따로, 부유한 이들따로, 이렇게 끼리끼리 모여서 잘 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1독서의 이사야서에서 우리가 들은 세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완전히 뛰어넘는 신세계입니다. 소를 잡아먹던 사자가 소와 함께 여물을 먹는다고요! 어린 아이가 독사랑 논다고요! ‘세상에 이런 일이!’
이 신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는 것이 아니고,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재판의 기준이 그동안 우리가 알던 그 방식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노래(루카 1,46-55 참조)하셨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는 정의와 정당함으로 살리는 심판이 있는 곳.
아, 이런 곳에 살고 싶어라! 이곳이 지금 가까이 왔다고 요한이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벅찬 일입니까! 우리의 삶을 이렇게 바꿔주실 예수님께서 지금 오고 계십니다. 거의 도착하실 때가 되었답니다. 다시 한 번 대림 첫주에 마음에 새겼던 작은 희망, 희생을 떠올립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씀에 대림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새로운 마음으로 향합니다.
회개, 주님께 돌아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한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쏟아부은 말은 섬뜩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도끼가 나무뿌리에 닿았다, 불 속에 던져진다.” 이 얼마나 심한 말씀입니까?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무라야 했을까요? 세례를 받으러 멀리서 왔는데도, 요한은 가차없습니다. 바리사이나 사두가이에게만 요한의 질책이 해당되는 것일까요? 나는 아니겠지, 나는 괜찮겠지. 우리보다 바리사이가 못해서 이런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까? 지난 주에 마음 먹었던 것도 지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입니다. 요한이 우리에게 더 심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까요? 갑자기 무서워집니다. 요한에게 가서 물로 세례를 청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요한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회개’는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현실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로 나가 그 외침을 듣고 있습니까? 왜 광야라는 척박한 곳에서 요한은 하늘 나라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까요?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모인 성전 앞에서 선포하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광야에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안락, 안전,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본성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쉴 곳도 없는 광야에서 외치고, 듣는 것.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가장 척박한 곳에 가 보고, 그리고 회개,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 오라고 요한은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안전 장치도 없이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을 놔두고 우리가 하늘 나라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성을 거스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가난한 이, 부유한 이라는 표시 없이 모두가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곳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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