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산외면 보리마을, 허허벌판 한 가운데에 베일러(비닐로 감싸 만든 건초 뭉치) 탑 하나가 세워졌다. 밀양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진 탑의 이름은 ‘밀양의 얼굴들’이다. 현장을 찾는 예술인단체인 ‘파견미술팀’이 제작한 상징 조형물은 3일 간 밀양 사람들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눈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지만 그 중에서도 꽃과 사람들의 얼굴이 어우러져 포근함을 전해주는 신주욱(펠릭스·34·서울 서교동본당) 작가의 그림은 황량한 겨울철 논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파견미술팀을 비롯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활동하며 예술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위안이 되어 주는 신 작가를 지난 5일 서울 상수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밀양에서의 작업 여파로 지독한 감기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홍유미(에우제니아) 작가와 함께 12~18일 서울 구로3동 신도림예술공간 고리에서 진행하는 2인전 ‘우리’(WE)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 시대에서 잊혀진 가치들을 우리 같이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전시를 기획했어요. 연말이라 날씨도 춥고 사회적으로도 힘든데 따뜻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사랑과 우정, 평등 등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추상적인 가치를 주제로 하지만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귀엽고 화려한 캐릭터와 꽃 등으로 채워진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 자신이 실제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경험한 감정들을 담아낸 덕분에 대중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신 작가가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예술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겐 사회적 약자나 일반 대중들에게 ‘그림 참 좋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친근하고 다가가는 예술가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또 동인천과 제주도 지역 등 낙후된 마을에 벽화를 그리는 재능기부를 하기도 하고, 경기도 평택 대추리, 서울 용산 등 아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화가의 꿈을 키운 그에게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과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교동본당에서 박기호 신부님을 뵙고 예수살이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신앙과 제 안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찾게 됐어요.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됐죠.”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신 작가는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 2007년부터 3년 간 청주교구 주보에 묵상그림을 연재했고, 내년에는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교재와 교회 잡지에 작업할 예정이다. 또 수도회가 운영하는 병원과 피정의 집에 재능기부한 벽화도 있다. 이러한 활동은 그에게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앞으로도 소통하는 작업을 계속하려고 해요. 열린 작업, 공동 작업을 하며 낙후된 지역을 재미있고 밝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더불어 해외에 가서도 이런 작업을 이어나고픈 바람이 있어요.”
인터뷰를 끝내면서 미술가 신주욱 작가의 최종 목표를 물어봤다.
“제 머리 속에 그림 하나가 있어요. 할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그림으로 구현해주는 이미지죠. 여기서 할아버지는 바로 저에요. 그때까지 친구 같은 그림, 친근한 그림을 그려 볼 생각이예요.”
※문의 02-867-2202 신도림예술공간 고리
문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