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떠나 4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 정남은 어릴 적 추억들을 기억할 여유도 없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던 것 같았습니다.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생활 습관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골생활에 적응하기란 결코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집안 아저씨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사귀다 보니 빠른 속도로 ‘정남 스타일’로 변화돼 교회 내 ‘기득권자’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저에게는 과분한 ‘총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곳 정남본당은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집성촌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최(崔)씨이지만 신자 중 30%이상이 최씨 또는 그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당 출신 사제가 다섯 분 계시는데 모두가 최씨입니다. 두 번째가 신자 비율이 타 지역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신자 비율이 교구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15%대를 육박한다는 것은 정남본당만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 이곳을 떠나 신앙생활을 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본당에 대한 애착심, 자부심이 대단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이 잘못 변질되면 타 지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지역 텃세, 기득권 세력들의 높은 장벽으로 비칠 수 있단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은 외면 한 체 내 것, 우리 것 이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하며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정작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높은 담을 쌓아 배타적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우리들 신앙의 현실은 아닐까요?
기득권 포기의 삶을 가장 잘 실천하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으시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사셨고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가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불편한 삶을 살아라”고 가르치고 계신 지금 이 순간 나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신앙의 기득권이라는 큰 울타리에 갇혀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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