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두 권의 일기장을 쓰게 됩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 어둠, 아픔, 상처, 슬픔, 고통이 쓰여져 있습니다. 나머지 한 권에는 행복, 감사, 사랑,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 두 권의 일기장에는 매일 매일 일어났던 일들과 내 마음 안에 들어왔던 생각과 느낌이 기록됩니다. 지난 대림 시기 동안 이 두 권에 쓰인 내용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한번 천천히 읽어보셔요. 두 권 중 어느 일기장이 더 두꺼울까요? 우리의 어둠이 적힌 일기장일까요? 아니면, 행복했던 순간들, 감사하고픈 사람들이 가득한 일기장일까요? 많은 분들이 첫 번째 일기장이 더 두꺼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오늘 하루 가만히 지난 대림 4주간을 돌아보셔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이 대부분 두 번째 일기장에 적힌 것들임에 또 놀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일기장이 더 두꺼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 일기장을 자주 열심히 읽기 때문입니다. 반면, 두 번째 일기장은 훨씬 두꺼움에도 불구하고 옆에 놔두고 읽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우리는 행복했던 일들, 고마운 사람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대신, 내가 안고 있는 문제, 고민, 상처, 죄는 자주 자주 들춰봅니다. 이유는 그것들을 잘 정리하고 깨끗해지고 싶어서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를 쓰는데, 정작 우리가 만끽해야 할 하느님의 선물인 아름다움, 행복, 기쁨을 한옆으로 제쳐 둡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바라봐야 하고,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곁에 항상 계셨습니다. 우리의 기쁨, 행복, 감사가 가득한 그 일기장을 보셔요. 예수님께서 한시도 빼놓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일기장을 끼고 삽니다. 그 일기장만 열어서 읽고 읽고 또 읽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둠에만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목동들의 증언을 들으면서(루카 2,15-20), 생명, 우리의 빛을 만났습니다. 죄 짓지 않기 위해 애쓰고, 이웃을 돕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데, 어느새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눈부신 빛으로 오셨습니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준비를 착실히 잘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리 없이 우리 앞에 아기가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열심히 해서, 제가 예뻐서 오신 것이 아니라, 제가 여기서 힘겨워하고 있으니까 오셨습니다. 제 힘을 덜어주시고, 어둠에서 빛을 밝혀 생명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제가 어둠이 적힌 한 권짜리 일기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빛이 가득한 일기장을 펼쳐서 제게 보여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아듣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이 세상에 계셨다는 것을. 물론, 우리의 인생 모든 구석구석에도 당신의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빛이 새롭게 우리에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성탄이 되어서야 알게 됩니다. 빛이 없었다가 나타난 것이 아니고, 빛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두 권의 일기장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일기장을 예수님과 함께 읽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록할 것입니다.
2013년의 일기장을 열어보셔요. 먼저 어떤 일기장부터 읽어보시겠습니까? 아기 예수님께 자장가 들려주시듯 두 권 다 읽어주셔요. 빛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일기장을 읽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셔요. 두 권의 일기장에는 가족들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감사를 전하셔요. 또 세상 사람들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같이 나눠야 할 많은 가난한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오늘 일기장에 적어 넣으셔요. 내일 그분들을 찾아보셔요. 그곳에서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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