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아기가 만났습니다. 박사들은 기뻤고, 아기에게 경배하며 준비한 선물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박사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짐작하기 어렵겠지만, 최소한 그들은 아기를 보면서 기뻤고. 값비싼 선물을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미뤄보건데, 박사들은 고향에서 기쁨 가득한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빛도 있고, 어둠도 있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나는 법입니다. 세상이 혼돈으로 가득했던 때 빛이 생겨나 세상을 밝히고 질서를 잡았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입니다. 2000년 전에 밝은 빛이 유다 지방 베들레헴을 비췄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갓 태어난 아기가 누워있었습니다. 이 아기는 빛이 되어 사람들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목동들에게 이 빛은 비춰졌고, 그 다음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에게 비춰졌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 빛이 비춰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빛이 비춰지기 전인 어둠이 있습니까? 그때그때 다르지요. 어둠 속에만 있지도 않고, 허구한 날 빛이 가득한 행복한 날만 계속 되지도 않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봐도 내 자신이 대견스럽고, 멋집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어쩜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마치 천사처럼 맑고 깨끗하고 희생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저게 사람인가 싶을 만큼 못된 짓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이중적이고, 모순 가득하고, 정리되지 않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혼돈 가득한 어둠처럼 보입니다. 이 복잡다단한 우리 삶에 아기가 한 명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아기가 되어 혼돈의 한복판에 들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당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귀한 순간입니다. 하느님을 뵐 수 있다니, 박사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드러나심은 소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미비, 미천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구세주라고 믿기지 않는 지극히 가난한 모습으로 왔습니다. 우리의 삶을 멋지게 재구성해 줄 구세주는 위풍당당한 그런 분이셔야만 한다고 우리는 믿었습니다.
실제는 어떻습니까? 우리 삶에 영향을 줬던 분들을 기억해 보셔요. 그분들이 명성 높으신 분들이셨습니까? 아닐걸요. 나 말고는 그분을 세상은 알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그저 그렇게 소박하게 당신의 인생을 사셨던 그분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큰 변화의 시작은 아주 아주 조용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얼마나 보통의 일입니까! 이 일이 큰 빛의 시작임을 동방에서 온 박사와 목동들만이 알아봅니다. 헤로데와 그의 부하들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작은 시작을 알아듣습니까?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경배하는 그 일. 박사들이 한 그 일. 그 일을 통해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어둠을 몰아내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이 초대를 계속해서 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을 통해서 또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초대 받은 것처럼.
초대에 응한 박사들은 결국 귀한 아기를 만납니다. 거기서 그들은 빛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많은 소박하지만 귀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과의 만남과 나눔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되었습니다. 그 만남들은 귀했고 소박했으며 어쩌면 미천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기뻤고, 희망과 용기를 얻어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되어 이렇게 여기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아기 예수님과 그 빛을 찾아 다녔고, 또 만났고, 경배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만 이제는 압니다. 그때,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귀했는지.
그동안 많은 귀한 만남에도 왜 나는 지금 이 모양이지 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셔요. 우리는 쉽게 상처 받고, 죄 짓는 인간입니다. 넘어지기 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이 자주자주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으시면 오늘 내가 이렇게 예수님께 기도 드리지 못 할 것입니다. 귀한 자리로 초대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기 예수님께 기쁘게 경배드립니다. 새해에도 귀한 만남이 이어질 것을 믿습니다.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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