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에게 성당은 학교이자 놀이터였다. 철없던 어린 시절,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미사에도 기쁜 마음으로 참례했고,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전’을 읽고 또 읽으면서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였다. 소년이 하느님 나라의 작은 도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리고 소년은 꿈을 이뤘다. 누구보다 겸손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실천하는 사제가 됐다.
소년, 미사의 기쁨을 느끼다
서울대교구 유경촌 보좌주교의 유년시절은 언제나 ‘교회’와 함께 했다. 중학교 1학년이던 1975년 세례를 받기 전에도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환경조사에 늘 천주교 신자라고 썼다.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이미 그레고리오성가를 비롯한 가톨릭교회 음악에 매료됐고, 매일 아침 등굣길에 만났던 성당의 성모상을 보고 인사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신자가 된 후에는 하느님 안에서 즐거웠다. 소설책은 읽지 않더라도 신심서적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당에서 빌려 본 많은 성인전은 소년 유 주교에게 ‘복사’에 대한 열망을 심어줬다. 결국, 서대문에서 중학생 복사가 있던 명동성당까지 찾아갔다. 새벽마다 경향신문사와 덕수궁, 시청 앞을 지나 성당을 향해 한달음에 뛰어갔다.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 주교가 집전하는 전례는 본당 신자는 물론 동료 사제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명일동본당 사목협의회 김영종(베드로 첼레스티노) 전 총회장은 “미사 전례를 정성껏 거행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교우들이 큰 감동을 받았고, 덕분에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미사 참례자 수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또한 낮은 이와 함께
소신학교를 거쳐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한 유 주교의 시선은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장애인을 돕는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희망의 집을 후원했다. 낮은 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그는 독일 유학길에 올라서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사회윤리를 전공하면서 ‘창조 질서’ 주제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사회복지 분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유 주교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있어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아픔을 어루만져줬다. 그래서인지 유학생활 중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온 유학생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6년 간 유학생활을 함께한 김영장 신부(수원교구 안법고등학교 교장)는 “성품이 곱고 마음이 따뜻한 유경촌 주교님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항상 배려했다”고 회상했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제
가톨릭대 교수와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유 주교는 교회의 일꾼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2005년 가톨릭대 신학대학 개교 150주년 기념 화보집을 발간하기 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또한 통합연구소에서는 교구 사목활동에 필요한 크고 작은 연구들을 진행했다. 결코 쉽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유 주교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항상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사목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최원석 신부(세검정본당 주임)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품으로, 일을 할 때나 개인적인 관계에서나 언제나 인격적으로 대하셨다”면서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나서 해결하곤 하셨다”고 전했다.
다른 이에게는 낮은 자세로 임하는 유 주교는 어떤 누구와도 친교를 쌓았다. 선배는 깍듯이 모셨고, 후배와 학생들에게는 큰형과 같은 존재로 다가갔다. 신자들에게는 겸손한 사제로 모범이 됐다.
유 주교가 보좌신부로 활동할 당시 목5동본당 주임이었던 김구희 신부(문정2동본당 주임)는 “검소하고 긍정적인 모습에 많은 신자들이 좋아했다”면서 “사제 간에도 자주 시간을 보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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