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식 때가 기억나십니까? 아쉽게도 저는 어려서 세례를 받아 기억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면에서 좋으시겠습니다. 나이 서른에 당신이 직접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달라고 말씀하셨고, 생생한 소리도 들으셨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세례식 중에 또는 세례식이 끝나고 어떤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와 비슷한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저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소리도 이미지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 안 됐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복사를 설 기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는 성당이 있었고, 복사단에서 활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두 번의 세례식 때 복사를 섰습니다. 대학교 성당이다 보니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 신자들이 모두 성인이었습니다. 1년 동안 교리를 듣고 준비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저는 교리반 도우미, 미사 복사를 하면서 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저야 선택의 여지 없이 어렸을 때 세례를 받고 주일 아침마다 성당을 나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이 젊은 사람들은 왜 주일 아침을 반납하는 이런 일을 스스로 하려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례식 복사를 서면서 세례자들이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들 곁에서 아무런 감동 없이 전례 순서를 잘 따라서 세례식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복사 역할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들은 세례식을 통해 정말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물이 증거일 수 있겠지요. 많은 사람들의 축하도 새로 태어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세례자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들이 듣고 싶었던 소리였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뜻밖의 소리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학생 시절에 수녀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도 다시 세례 받게 해 주셔요! 세례자들이 들었던 소리, 느꼈던 감동을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 우리는 꽤 많이 변했습니다. 우선 매주일 아침 혹은 저녁에 성당에 갑니다. 그전에는 자거나 놀러 가거나 일을 하기도 하고, 또 뭐 그냥 보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성당에 가서 성가를 부르고,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일치하는 영성체를 합니다. 이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또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세례를 준비하면서 시작했던 기도를 계속해서 해 나갑니다. 그전에 몰랐던 묵주기도를 합니다. 묵주반지가 예쁘게만 보였었는데 지금은 반지를 돌리며 성모송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자식을 위해, 친구를 위해, 나라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만 챙겼었는데 이제는 이웃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후에 매일같이 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에 이끌려 우리가 행동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우리 각자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아들아, 참 이쁘다. 딸아, 참 잘 한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엄청난 것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힘든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세례 전에 우리는 몰랐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신지? 왜 내 삶은 힘들기만 한지? 세례 때의 은총, 들었던 소리가 알려줍니다. 나의 어둡고 힘들어 보이기만 하는 이 구질구질한 생활 곳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래서 더 힘차게 외칩니다. 저는 세례를 받고 지금 이렇게 하느님 당신 앞에 나와 기도합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요.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나가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처럼 쉴 새 없이 기도를 합니다. 기쁠 때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힘들 때 청원의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기도란 것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의 소리를 전합니다. 우리 마음의 소리를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우리 마음에 당신의 소리를 심어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품고 오늘 하루 또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돌봐주소서.”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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