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씨는 얼마 전 운전을 하다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느꼈다. 미숙한 운전자 탓에 고속도로에서 제대로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B씨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미숙한 운전자의 차를 따라다니며 진로를 방해했다. 일명 ‘보복운전’을 감행한 것. 함께 타고 있던 아내의 만류로 이내 보복운전을 멈췄지만, 분노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본인의 화로 인해 아내와 세 살짜리 아들이 위험에 처할 뻔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나 아찔했다.
분노가 일상이 돼버렸다. 말 한마디에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있으며, 도로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보복운전이 전체 사망사고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지난해 한 한의원이 20~30대 성인 228명을 대상으로 ‘집중력과 감정조절 실태를 통한 야외활동과 집중력 문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74명이 ‘감정기복이 심해 작은 자극에도 분노가 폭발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즉, 성인 10명 중 4명이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돼 일상화된 분노사회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는 분노를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시키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하며,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와 분노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야고 1,19~20 참조)고 당부한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악의와 함께 내버려라”(에페 4,31)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사도들의 충고와는 달리 점점 분노로 물들고 있다. 하느님의 의로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분노하는 사회,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 분노사회
감정조절 어려운 ‘분노조절장애’
양극화·스트레스·불평등 구조에 기인
해마다 증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
분노조절장애는 주위 반응에 쉽게 예민해지고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정식으로 등록된 질병이 아니지만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성격장애 등의 증상으로 분노조절장애를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때문에 관련 증상으로 상담을 의뢰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것은 물론 정신과를 찾는 환자 중 절반이 분노와 화 문제를 토로하고 있다.
여러 통계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2012년 청소년상담 경향 분석보고서’를 통해 우울·위축, 강박·불안, 충동(분노)조절 문제 등 정신건강 관련 내용이 직접 방문상담의 25.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와 비슷한 ‘충동조절장애’의 경우 2007년 1660명이던 환자가 2011년 3015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과거 분노를 지나치게 억압해 ‘울화병’을 앓았던 한의 민족이 이제는 분노의 민족으로 변했다.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신경철(토마스모어) 진료부장은 “분노조절장애는 공식적인 정신과 질병은 아니지만 이 시대의 조류와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사회적인 스트레스와 함께 욕망이 현실화 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전했다.
최근 분노조절장애는 사회적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 등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석현 연구위원이 발표한 ‘분노사회의 진단과 관리전략’은 결과지향적인 사회 문화, 빈부의 격차에 따른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등을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1인가구의 증가로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받을 가족과 동료들이 감소하고, 스트레스가 커짐에 따라 일상적 분노가 자주 분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연구위원은 “양보를 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 대한 무차별적 폭언과 욕설을 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성향이 사회적으로 팽배하다”면서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는 타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분노 현상이 보다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분노가 낳은 분노
현대인, 자신의 행동 통제에 어려움 느껴
극단적 경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
실제 우발적 범죄 비율 갈수록 증가 추세
지난해 5월 인천 십정동에서 방화사건이 일어나 20대 젊은이 두 명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다.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다툰 피의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
분노하는 개인의 문제는 이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은 범죄율이 하락하는 반면 한국은 흉악범죄와 절도·사기 등 재산 범죄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는 극단적인 경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심교린(프란치스코·EMW 심리지원실) 심리전문가는 “아이들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늘어나는 사실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인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이는 당연하게 범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벌어지는 ‘우발형 범죄’와 현실불만형 ‘묻지마 범죄’가 전체 범죄건수에서 전체적으로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발적 살인 혐의자는 2000년 306명에서, 2005년 319명, 2010년 465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우발적 방화 역시 2010년 583명으로 2000년에 비해 약 1.7배 증가했다. 5대 범죄 가운데 살인, 강간, 폭력, 절도의 범행동기 중에서도 우발적 범죄가 상위권을 차지(2012년 기준)하고 있다.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는 국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9월 미국 워싱턴DC 총기난사 사건 용의자 에런 알렉시스는 9·11테러 현장에서 받은 충격으로 분노조절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석현 연구위원은 “분노는 개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개별적이고 일회적 감정이지만 개인의 분노가 일상화되고 집단화될 때 분노하는 사회가 된다”고 지적했다.
▲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분노조절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을만큼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오랫동안 영성의 보화를 쌓아온 교회가 현대인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역할에 앞장서야 한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가 마련한 보호관찰 청소년 대상 분노조절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용서의 편지를 쓰는 모습.
■ 당신의 분노,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부터 올바른 인성함양 선행돼야
기도·신심활동 자체로도 충동조절에 도움
가톨릭 보화 ‘영성’ 구체적 적용 연구 필요
일상화된 분노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분노사회의 진단과 관리전략’은 ▲성숙한 사회로 한국인의 지향성 전환 ▲스트레스 관리와 분노조절 위한 전문상담교사제 확대 및 인성교육 프로그램 확충 ▲스트레스 관리 중심으로 한 기업의 인사관리시스템 강화 ▲사회안정망 및 경제적 재기 지원 프로그램 확대 및 지역유대감 강화 ▲생활친화적 정책을 위한 생활형 지표 개발·운용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인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가정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성인이 돼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하기 어렵고, 만성화된 경우 뇌 기능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신경철 진료부장은 “개인 스스로가 욕망이 좌절됐을 때 극복할 수 있도록 내적 소양을 키워야할 필요가 있지만 사회 환경도 변화해야 한다”며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증상의 발병, 재발은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교회도 이 문제에서 빠질 수 없다. 영성과 종교심리학에 심취한 세계 심리학 연구 동향에서 살펴볼 수 있듯, 영성과 신앙은 분노조절장애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도와 신심활동 자체만으로도 충동조절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교회는 영성에 대한 연구와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톨릭의 보화인 영성의 구체적인 효과, 적용을 연구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심교린 심리전문가는 “기도로써 자신을 바라보고 반성하면 뇌에서 집중력과 통제력을 만들어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기도는 엄청난 힘을 가져올 수 있기에 교회의 관심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 다스리려면…
통합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의료업체가 최근 분노를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 10가지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업체에 따르면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세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 화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노에 반응하는 방법을 바꾸기 위한 명상과 운동을 추천했고, 잠시 쉬면서 화가 났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생각한 뒤 말하기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가능한 해결책 확인하기 ▲운동하기 ▲자리 피하기 ▲거울보기 ▲도움 청하기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