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는 12일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대주교를 비롯한 교황청 소속 대주교 4명과 유럽, 북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전 세계 5개 대륙의 대교구장 11명과 교구장 1명 등 모두 16명의 교황 선출권을 지닌 추기경단을 임명했다.
대개 교황의 추기경 임명의 경향을 보면 그 교황의 통치 스타일과 방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파격적인 행보,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의 쇄신과 개혁의 발걸음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새 추기경 임명 역시 그처럼 향후의 사목적 방향을 엿보게 한다.
이번 교황의 첫 추기경단 임명의 특징은 크게 보아 전통에 대한 존중과 파격, 추기경단 구성에 있어서 유럽과 북미에서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비중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연재해와 빈곤으로 고통받는 ‘변방 교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으로 더 구체화된다.
■ 보편성 지향
무엇보다 ‘보편성’의 지향이 눈에 띈다. 남미와 중미 5명을 비롯해, 아시아 2명과 아프리카 2명 등 그동안 추기경 임명 소식을 듣기 어려웠던 지역에서 고루 새 추기경이 배출됐다. 특히 아이티 레카이 교구장(아이티 주교회의 의장) 출신의 치블리 랑글루아 추기경 임명은 아이티 교회 최초의 추기경 임명이라는 데서 주목된다. 랑글루아 추기경은 이번 새 추기경단 중 유일하게 대주교가 아닌 주교로서 추기경에 서임됐고 나이도 최연소인 55세다.
■ 가난한 나라에 대한 배려
두 번째 특징은 ‘나라에 대한 배려’를 꼽을 수 있다. 가난과 질병, 폭력, 자연 재해에 고통 받고 있는 나라들인 아이티, 니카라과, 부르키나 파소, 코트디부아르, 필리핀에서 추기경이 나왔다. 아르헨티나에서 이주민의 아들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교황은 일관되게 낮은 자세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호소해 왔고 자본주의의 불평등성과 물질문화를 비판해 왔다.
미주 대륙의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폭력과 자연재해가 빈발한 곳이다. 2010년 1월 발생한 아이티 강진은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가져왔고 아직도 지진의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니카라과 역시 최소 생계비로 생활하는 나라로 정치적 사태까지 겹쳐 있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와 코트디부아르, 아시아의 필리핀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자 자연 재해로 인한 상흔이 가시지 않은 곳이다. 니카라과는 아이티와 함께 이번에 최초로 추기경을 배출하는 경사를 맞이했다.
■ 추기경 임명 전통 깨뜨려
세 번째 주목할 부분은 교황이 추기경 임명에 있어 당연시 되던 ‘전통’을 깼다는 것이다. 1929년 교황청과 이탈리아 사이의 라테라노 협정이 체결된 이래 로마교구를 시작으로 밀라노, 토리노, 베니스 등 이탈리아의 주요한 9개 교구의 수장들은 추기경에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교황은 이번에 토리노와 베니스 등에서 추기경을 뽑지 않고 페루지아-치타델라피에베 대교구장 괄티에로 바세티 대주교(이탈리아 주교회의 부의장)에게 비레타를 씌어줬다. 바세티 대주교는 목자로서 온유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교황이 주교의 덕목으로 강조했던 성품과 일치한다. 페루지아대교구에서 마지막으로 추기경이 된 인물은 지오치노 페치 대주교로 훗날 1853년 교황 레오 13세가 됐다. 160년 넘게 추기경이 나오지 않던 페루지아대교구에서 새로이 추기경이 배출된 일은 이번 추기경단 서임의 최대 이변으로 받아들여진다.
■ 유럽 출신 추기경 최소화
네 번째 특징은 유럽 출신 추기경을 최소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추기경 서임에 있어 ‘보편성’을 지향했다는 첫 번째 특징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추기경단 배출에서 소외됐던 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대한 배려를 위해 상대적으로 유럽이 누려왔던 우월적 지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평가다.
교황 선출권을 지닌 새 추기경 16명 중 유럽 출신은 모두 6명으로 외견상 상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중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탈리아), 로렌초 발디세리 교황청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이탈리아), 게르하르트 루트비히 뮐러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독일)과 베니아미노 스텔라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탈리아)은 교황청 소속이기 때문에 순수 유럽 출신은 빈센트 니콜스 웨스트민스터 대교구장(영국)과 괄티에로 바세티 페루지아-치타델라피에베 대교구장 두 사람에 불과하다.
■ 미국교회 추기경 안 나와
전체적으로 볼 때, 라틴아메리카에서 5명의 추기경이 한꺼번에 탄생한 것은 사실 예견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의 40%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데다 교황을 배출한 대륙으로 교황의 후임자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도 새 추기경 명단에 포함됐다.
반면 북미지역에서는 캐나다에서만 제라르 시프리앵 라크루아 퀘백 대교구장이 유일하게 비레타를 쓰게 됐다. 이것은 교황이 추기경 임명에서 특권을 누리던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우도 가톨릭신자 비율(전 세계 신자의 7%)에 비해 추기경 수(11명)가 너무 많다고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추기경 수는 세계 최대의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전 세계 신자의 약 10.5%, 추기경 5명)보다도 많다.
| 아시아 추기경들
새 추기경단 임명으로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단의 지역별 분포는 유럽 59명(이탈리아 29명), 라틴 아메리카 19명, 북아메리카 15명, 아프리카 13명, 아시아 13명, 오세아니아 1명 등이다. 5월 28일이 되면 이탈리아 추기경 3명이 80세를 넘겨 교황 선출권을 잃는다.
아시아의 경우, 추기경 총수는 21명이지만, 교황 선출권을 지닌 추기경은 13명에 그친다. 인도가 5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이 2명,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레바논, 중국, 스리랑카가 각각 1명씩의 교황 선출권을 지닌 추기경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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