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은 늘 ‘성당 할아버지’였다. 운동복 차림으로 명동성당을 산책하다 만난 신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소소한 일상에도 ‘허허허’ 웃는 할아버지다. 사제에서 주교로, 주교에서 대주교로 그리고 추기경으로 임명돼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사목자가 됐지만 그의 모습은 한결같다. 정 많고 친근한 모습으로 어린 양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묵자, 염수정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본다.
■ 겸손한 추기경
2001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염수정 추기경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격이 없는 제가 큰 은혜를 입어 송구스럽다”는 말을 첫 마디로 꺼냈다. 풍부한 본당 사목 경험과 교구 행정에 밝았지만 항상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낮춰 말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선후배 사제들 사이에서도 그는 항상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김수환 추기경도 염 추기경에 대해 “인내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온 덕망 있는 사제”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기경 임명 직후에도 염 추기경의 면모는 여실하게 드러났다. 상석을 양보하는가 하면 한파 중에도 축하식을 취재 온 기자들 걱정이 앞섰다. 그가 이렇듯 충실하면서 모범적인 사목자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순교자 집안에 6대째 내려온 신앙적인 배경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1995년 선종) 여사 덕분이었다.
그의 모친은 성경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설명해주면서 자녀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녀들 중 사제가 나올 수 있도록 매일같이 기도를 바쳤지만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다. 또한 슬하의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 수완(문정동본당 주임), 수의(잠원동본당 주임) 등 삼형제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아흔 평생 묵묵히 기도로 뒷받침 했다. 선종 순간까지 사랑과 희생의 삶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였던 모친의 모습만 보더라도 겸손하고 배려하는 염 추기경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 뚝심과 소통의 추기경
70대의 추기경은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마음과 행동은 언제나 청춘이다. 아이폰 유저이며, 디지털미디어를 활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실제로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와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한편, 800여 명에 육박하는 교구 사제단과 소통하기 위해 ‘사제전체모임’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말하기보다는 경청하며 이웃과 화합하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염 추기경은 자신의 몸을 낮춰 소통의 물꼬를 텄다.
그는 ‘뚝심’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레지오나 본당 복사활동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내지 않고 자기 맡은 소임을 끝까지 충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970년 사제품을 받고 불광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성신고등학교 교사, 가톨릭대학교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등 본당과 특수사목을 두루 경험하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명확하고 묵묵하게 처리해 동료 사제들로부터 돈독한 신뢰를 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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