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매체의 문화비평에서 TV를 보는 눈은 별로 곱지 않다. 같은 시각매체인 영화에 대한 비평은 고전 명작뿐 아니라 근래에는 최신 개봉작으로까지 꾸준히 시도된다. 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대중적인 콘텐츠인 TV 프로그램에 대한 분석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내용도 선정성과 폭력성, 판타지의 허망함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TV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존재인지를 생각한다면, 현대인의 삶의 반영인 대중문화를 읽는 데서 TV 읽기를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중매체 중에서 TV만큼 접근이 쉬운 것은 없다. 신문을 읽으려면 작은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시력과 독해력이 필요하고, 유료로 구독하거나 인터넷이라도 설치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데도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공연들은 특정 장소와 기간에만 볼 수 있는 데다, 더더욱 비싼 대가와 추상적 표현을 읽어내는 안목까지 요구한다.
다른 유형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오늘의 세상과 신자들 사이에서 TV만큼 평등한 매체는 없다. 서울 본당의 사목회장님 댁 거실에도, 농어촌 공소의 어르신 댁 안방에도 있는 것이 TV다. 사생활 존중이라는 미명 아래 공동체 의식이 엷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공동의 경험을 가장 광범하게 제공하는 매체가 TV다. 수십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레지오 단장님도, 엊그제 환영식을 치른 예비신자도 주일 저녁에는 주말연속극 <왕가네 식구들>을 보며 같은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그뿐인가. 2013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은 여가생활로 여행을 꿈꾸지만 실제로는 10명 중 6명이 TV 시청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서민과 노인은 비용 부족으로, 중산층과 청장년은 시간 부족으로 근사한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TV 시청은 가장 현실적인 차선의 문화생활 아닌가.
교회의 현대 문화 읽기에서 TV 읽기가 필요한 다른 이유는, 세속적으로 볼 때 TV가 현대사회에서 어느 모로 종교의 대체재 구실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프로그램은 한번 방송되면 잊히는 가벼운 소비재이지만, 그 흔함과 가벼움을 무기로 대중 정서에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를 위해서라도 제작자들은 대중의 정서적 결핍을 면밀히 살피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게다가 지금은 시청자의 높아진 안목에 맞춰 재미와 완성도를 겸비한 작품도 드물지 않고, 인기 프로그램은 시즌(시리즈) 형태로 수명을 늘리고 있기에, TV를 단순히 ‘일회용’, ‘바보상자’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TV를 켜는 현대인의 정서적 욕구는 일상에서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향한 갈망이며, 화면 속에서나마 행복감, 희망, 자존감을 맛보고 싶다는 일종의 영적인 기대이기도 하다. 이는 신자들이 종교에 갖는 기대 중 부동의 1위인 ‘마음의 평화’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 신자로서 TV에 비친 현실의 단면을 살피는 동시에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응답해야 할 물음들을 찾아보려 한다.
김은영(크리스티나, TV칼럼니스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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