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내가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할 때, 계획했던 일이 실패하고, 사는 게 재미없어질 때 우리는 폭주기관차처럼 살아온 인생을 멈추고 인생의 물음 앞에 서고 싶어 한다. 하지만 쉴 줄 모르고, 물음에 답을 찾는 일에도 서툰 우리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혹스러워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안정과 평화를 누린다. 내가 지닌 신념이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주고,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종교가 삶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많은 이들이 믿지만, 때로 종교가 참된 내적 평화보다는 현실도피를 위한 아편 같은 것으로 전락할 위험도 없지 않다.
이 점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내가 믿고 있는 가톨릭 신앙의 깊이와 맛을 보기보다는 믿음 행위가 내 삶을 어떻게 치유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갖는다. 사는 게 힘들 때는 신앙이 힘이 되지만, 삶이 평온해지면 신앙이 여가생활의 일부가 되거나 일상의 변두리로 밀려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제로 살면서 신자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볼 때마다 그들의 고민이 내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겪은 삶과 신앙의 문제들을 풀 수 있게 해주었던 신학적 고민들이 신자들에게도 현실의 신앙 문제를 풀어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싶었다.
「세상 속 신앙 읽기」는 이런 면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교리나 성경에 대한 지식보다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솔직하게 만나는 일부터 시작한다. 세상 속에서 겪는 현실적인 물음으로부터 왜 내가 하느님을 찾는지, 내가 속해 있는 교회 안에서 부딪히는 신앙과 교리들이 내 인생에 왜 중요한지 묻는다. 내가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에서 나와 다른 종교적 신념을 지닌 이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함께 살지도 묻는다.
믿음이란 세상을 등지고 세상 밖의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세상을 당신의 육(肉)으로 취하신 하느님과 함께, 세상의 죄와 죽음을 짊어진 예수의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평화와 희망을 역설적으로 찾아내는 순례의 여정이다. 「세상 속 신앙 읽기」는 신앙의 정답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신앙에 물음을 던지고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앙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나, 교회에서 상처 받고 길을 잃은 이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믿음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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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은 나한테 익숙한 삶에 변화를 촉구하는 힘든 도전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발을 띠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는 아름다운 체험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제3의 눈’을 갖는 것이다. 내가 어려서 보지 못했던, 때로는 나이가 들어서 가려졌거나 스스로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아버린 눈을 다시 뜨는 것이다.” (본문 9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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