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장에 소개되는 노아와의 계약 이야기는 하느님, 인간, 그리고 땅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대하여 가르친다. 이 다차원적 계약(multidimensional covenant)이 제시하는 올바른 관계의 본질은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과 온 땅은 그분에게 의존한다. 둘째, 인간은 하느님과 땅, 둘 다에 의존적이다. 인간은 생명과 구원에 있어 하느님에게 의존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식량, 산소, 물, 공간 등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적 차원에서의 생명에 있어 땅에 의존적이다. 셋째, 땅과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안녕과 생존에 있어 인간에게 의존적이다. 이와 같이 노아 이야기는 전체 성경의 세계관을 잘 대변한다. 즉 창조 질서의 본질은 하느님, 인간, 그리고 땅 사이의 상호관련성(interrelationship)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생태학적 차원의 상호의존성과 상호관련성은 자연 과학에 의해서도 충분히 입증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믿지 않는 이들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의존성을 부인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반해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적인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인간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의존성을 쉽게 망각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땅의 위치를 놓치기 십상이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인간과 나머지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 왜곡된 태도는 땅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을 위한 돌봄이라는 인간의 책임에 소홀하게 한다. 이것은 성경의 세계관과 상충하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환경을 인간 존재 위에 둔다든지, 인간의 유일성을 강조하여 땅에 대한 의존성을 무시하는 태도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성경의 방식은 어떤 것을 다른 것 위에 두거나 우선성이 충돌하는 위계질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형성된 상호의존성에 주목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적으로(biblically) 생각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생태학적으로(ecologically)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하느님, 인간, 땅의 연결은 그것이 계약 관계라는 사실이다. 즉 창조 질서 안에서의 상호의존성과 상호관련성은 계약에 기초한다. 이 계약의 원천은 하느님의 주도권, 곧 그분의 은총과 자비이다. 땅은 하느님이 좋은 것으로 평가하신 창조 세계이다. 그리고 땅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상대이다. 따라서 땅은 단순히 산업을 위해 가공되지 않은 재료와 자원을 공급하는 곳이 아니다. 땅의 풍요로운 결실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하느님은 땅과 계약을 맺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땅을 돌보는 것에 소홀히 하면, 그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노아 이야기가 “창조 세계 돌봄의 신학”(theology of creation care)의 성경적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성경의 관점에 따르면, 땅의 피조물은 인간의 돌봄, 곧 청지기 일의 상대이다. 그 이유는 다음 네 가지이다. 첫째, 하느님이 창조 세계를 창조하셨다. 둘째, 하느님이 그것을 보시니 좋았다. 셋째, 인간은 나머지 창조 세계에 의존한다. 넷째, 창조 세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곧 경륜(economy)의 한 부분이다.
이와 같이 창세기 9장의 계약은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현실적 관계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인간 존재와 땅은 창조주 하느님의 돌봄 아래에 있다. 창조 세계를 위한 돌봄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서의 삶, 청지기로서의 삶을 위해 본질적이다. 그것은 모든 차원에서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중요하다. 창조 세계를 위한 돌봄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찾는 우리의 성경 연구를,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한 우리의 명상과 땅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의 돌봄과 관심에 대하여 말하고(telling) 보여주는(showing) 우리의 증언을, 땅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우리의 단순한 생활 방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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