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이 밝았다. 「증거의 해」가 시작된 것이다. 박해와 시련의 연속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온 믿음의 힘으로 영광의 역사를 쌓아온 한국교회가 또 다른 시대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1985년은 그 어느때보다 깊은 감동과 설레임 속에 장엄하게 열렸다. 이제 한국교회는 복음화 3세기로 들어서는 첫관문, 1985년「증거의 해」를 맞이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은『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에 높이 들었던「이땅에 빛을」, 그 깃발은 내렸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이 살아있는 이땅의 빛이 되기위한 시작을 의미한다』고 강조하고『이제부터 우리는 참생명, 진실을 찾고있는 이나라, 이 겨레의 살아있는 빛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살아있는 빛」그것은 증거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 천주교회가 스스로에게 또 이 사회전체에게 펴보인 엄숙한 다짐이 틀림없는 것 같다. 빛으로서의 교회, 증거하는 교회를 향해 주교회의 의장으로 또 서울대교구장으로 그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낸 김 추기경과 특별대담을 마련、선교3세기의 역사적인 장을 함께 열어본다.
수많은 기대、무수한 눈을 의식하면서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맞고 보내야했던 김수환 추기경. 책임이 그 누구보다 막중했고 그만큼 두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었던 김 추기경은 1985년 증거의 해를 맞는 새해 아침에도 여전히 바쁜 일상속에 하루를 쪼개고 있었다. 삶의 고단함、아픔、괴로움에 직면한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졌기 때문일까? 때론 해결사이기를、때론 치료자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그들의 삶속에 보다 밀접하게 동참하지 못함을 깊이 반성하면서 새해를 맞는다는 김 추기경은 증거하는 삶이란 진복팔단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마태오복음(19、26~22)을 보면 어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일을 해야하느냐」고 묻는 대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최근 이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바로 저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았습니다. 과연 내가 매달려있는 것들「추기경」、「서울교구장」등등 나를 싸고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하느님만을 온전히 믿고 의탁하고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속에 믿고 또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한다』고 강조하는 김 추기경은『오늘의 한국교회가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픈얼굴로 떠나간 부자청년과 같다』고 비유하고『교회는 물론、우리 각자가 그리스도를 따르기위해 모든 것을 버릴수 있을때 증거하는 교회라고 말할수 있다』고 역설했다.
완전한 믿음의 표상은 안온한 삶의 터전으로부터 무조건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심없이 따른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을 들수가 있다. 아니 가까이로는 우리의 순교선열들의 순교정신에서 찾아볼수가 있다.
김 추기경도『재산과 가정、끝내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마저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때문에 의심없이 포기했던 순교자들의 정신을 우리는 피ㆍ살ㆍ뼈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 복음화 3세기의 첫관문、1985년의 다짐이자 결의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 순교자들의 고귀한 신앙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사실. 그「인정」은 지난 5월 1백 3위 성인 탄생으로 구체화 되었으며 1백 3위의 시성은 자랑스런 조상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다고 볼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인 84년은 순교자의 땅을 영광의 빛으로 가득해운 보람의 한해가 아닐수 없었다. 김 추기경은『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방한과 1백 3위의 시성으로 2백주년은 우리 모두에게 은총의 해가 됐다』고 말하고『여러가지 면에서 아쉬운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1984년은 한국교회 전체에 큰 기쁨을 안겨준 축복의 해였음』을 상기시켰다.
『다소 감상적일수도 있고 특히 자화자찬이 될 수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제한 김 추기경은『우리 국민의 무한한 저력이 좋은 동기만 주어진다면 훌륭하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보여준 한해였다』고 아울러 지적했다.
『처음 교황님을 초청했을때 교황님으로 부터 영국의 준비가 잘돼 있었다는 말씀을 듣고 영국에 사람을 파견하는 등 저 나름대로 꽤나 신경을 썼습니다』그러나『최근 외국에 나갈때마다 교황성하의 방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우리의 것이 아름답다는 느낌과 함께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냈구나 하는 감회에 젖어들곤 한다』고 밝힌 김 추기경은『교황성하께서도 조직과 영성면에서 한국의 준비가 완벽했다』고 감탄 하셨음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백주년 한해 전체를 살펴볼때 영성적인 심화ㆍ신앙쇄신 등 내적성숙이 미흡했다』고 시인한 김 추기경은『3백년대야말로 교황님이 남기신 말씀들을 깊이 묵상하면서 실천、내적풍요를 가꾸어 나가야할 중요한 시기』라고 역설했다.
사실 준비의 양ㆍ진행과정 등을 돌이켜본다면 2백주년의 폐막은 너무 소홀한 느낌이 없지는 않다. 지난 12월 1일 사목회의 폐회와 함께 치루어 버린 2백주년 폐막미사로 5년여에 걸쳐 진행해온 2백주년의 기념을 끝내버리기에는 너무 허전하다는 것이 신자들의 공통된 견해였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과정에서 사목회의는 허전한 끝을 메워줄「훌륭한 숙제」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있다. 『사목회의는 한국 교회전반을 새롭게 생각해 보다는 과정자체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직 완전히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지난번에 사목회의 총회에 참석、의안 및 제안사항들을 들으면서 좋은 내용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김 추기경은 사목회의 의안이 주교단에 상정된 후의 단계를 묻는 기자에게『주교회의가 좋은 내용들만 추려 연구 검토한다해도 몇해가 걸릴지 모른다』고 웃으며 대답、준비과정이 길었던만큼 마무리도 결코 짧지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앞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김 추기경은 해결사의 입장에 자주 서게 되었고 그 빈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몇년새 소외된 이웃、어두움에 대한 교회의「소리」가 적어졌다는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서도 고통과 아픔 부당함과 억울함을 당한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소리」로서의 김 추기경의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기만한 형편. 김 추기경의 지적대로 밝음 이면에서 어두움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있기 때문일까?
요란한「소리」가 결코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 들어 깊이 느끼고있다는 김 추기경은 달포전에도 서울 목동에서 하루 아침에 갈곳을 잃은 철거민들의 아픔을 현장에서 직면、그 아픔을 덜어줄수있는 방안을 찾기위해 고심하기도 했다.
김 추기경은『힘없는 이들、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오죽하면 나를 찾아 호소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사회、힘없는 이들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할 통로가 없는 현실은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것』이라고 촉구했다.
『교회라고 반성의 여지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최근 교회밖에서、또 교회안에서도 교회가 너무 부자가 아니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 것、아울러 성직자들의 청빈문제가 거론되는 것 등등이 바로 그것입니다』『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곳곳에서 짓고있는 교회를 보면、교회가 정말 부유한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김 추기경은『성전이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이니만큼 아무렇게나 지을 수는 없고 본당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다보면 많은 돈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 했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성당 건립 등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요소라 하더라도 교회는 이웃을 위해 자신을 모두 비울수있는 청빈ㆍ가난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교회와 성직자는 그 모습에서부터 모든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소외된 사람들이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아울러 역설했다.
『교구벽이 높다는 것도 교구간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도 우리 교회가 직면한 문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마 교구벽이 높다고 지칭되는 대상은 서울교구가 아닐까요?』실제로『서울의 한 본당 일년예산이 지방교구의 일년 예산보다 많은 오늘의 현실은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고 잘라말하는 김 추기경은『서울 자체의 맘모스화한 기형적인 발전이 교구격차를 야기시킨 범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빈ㆍ부의 격차는 서울교구내에서도 심하다는 지적을 인정한 김 추기경은 최근 높은 것 같은 담을 헐기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있지만 그대로 부족하기만 한다면서『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면 이를 설치해서라도 교구벽 교구격차를 없애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 높은벽을 헐기위한 단호한 의지를 펴보였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은 슬로건「이땅에 빛을」높이 올리면서 본격적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와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빛의 설정은 어두운 이 시대를 밝게 비추기 위한 의지의 표현임은 분명했지만 과연 우리가、교회가 빛의 역할을 했는가 하는 물음에는 답할 자신이 없다는게 대부분의 평.
여기서 1985년을 증거의 해로 설정한 배경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오늘 우리사회는 신뢰가 없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에 걸쳐 진실이라곤 찾아볼수가 없습니다.』따라서『신뢰회복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역설하는 김 추기경은『우리도 한번 위정자가 한 말을 믿을수 있는、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일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호소했다.
특히 어둡기만한 오늘의 현실은 소박한 기대마저 빼앗아갔다고 안타까와한 김 추기경은『위정자가 욕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로 돌아갈때 국민들은 우리의 정치가를 우리가 잘 뽑았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신뢰를 바탕으로한 굳건한 국가의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추기경은『사랑은 공기와 같아 사랑이 없는 삶은 산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이고『인간을 잃고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분명히 인식、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에서부터 85년 증거의 해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 교회가、신자들이 먼저 진실한 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말하는 것을 참으로 믿고 그 믿음을 실제로 사는 사람이 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보잘것없다고 외치는사람들을 내 이웃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교회에서부터 흘러나가도록 거듭 노력해야 합니다』
김 추기경은『신자 각자가 믿을수 있는 사람으로 탈바꿈할때 교회는 이미 증거하는 삶을 살고있는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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