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우리의 청소년들은 그 이름 앞에 거추장스러운 낱말을 달고있다. 언제부터인가 청소년을 지칭할때 붙어다니게 된 바로「문제」라는 낱말. 70년대 후반부터 강력히 대두되기 시작한 청소년 문제는 각종 매스콤의 눈부신 활약으로(?)폭넓게 알려졌다고 할 수가 있다. 사건이 터질때마다 그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들은 마치 이땅의 모든 청소년들을 각종 비행을 제조해내는 범죄집단으로 몰아쳤다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물론 미래의 주인공、내일의 희망으로 불리는 청소년들의 잘못을 무조건 너그러움과 관용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위태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청소년들을 보는 눈이 날카롭고 비판적일수 밖에 없다는 것도 전적으로 부인할 수가 없다.
여기서 비판의 칼날을 세우는 대신 그들의 장점、아름다움을 보는 자세가 우리들에게 있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보고싶다. 예외는 있겠지만 청소년들이 느끼고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는 그 모든 것들을 들어주고 수용하고자한 노력이 그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만큼 있어왔는가. 철들자마자 시험경쟁에 시달리면서 큰 숨한번 마음껏 쉬지못한 그들에게 마음 편히 쉴자리를 내어준 적이 있었던가.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외에「청소년 전용장소」라는 팻말이 붙은곳이 한군데라도 있었는지「미성년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자체가 그들을 유혹하는「미끼」가 되고 더욱이 팻말이란 단지 단속에 대비한눈가림일뿐 버젓이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는 업주가 성업을 하고 있음을 이미 잘 알려진 현실이기도 하다.
「문제」라는 타이틀을 명패처럼 달고있는 청소년、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서울에서 청소년들의 거리로 불리는 종로에서 만난 최군(17세)은 흔히 말하는 탈선 청소년의 표본(?)같은 모습이었지만 말투만은 꽤나 공손한 편이었다. S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그는『늦은밤에 왜 여기에있느냐』는 질문에『그럼 어딜 갈까요』라고 되받았다. 『이 시각에 집에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묻자『누나! 돈있음 좀 꿔주쇼』하고 말을 끊어버렸다.
한해가 끝날쯤의 밤거리는 다소 소란스러운 것이 상례겠지만 30일밤、종로 뒷골목의 풍경은 상당히 흥분된 모습이었다. 귀청이 터질것 같은 굉음의 소리가 술집마다에서 쏟아져나와 거리 전체가 커다란 홀을 이루고 있는듯했다. 무리지어 서성거리고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며 뭐라고 소리지르는 그 속에는 여학생들도 같은 비례로 섞여있었다. 현란한 불빛과 굉음만으로도 줄지어 늘어서있는「디스코텍」그 내부의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조금뒤 찾아간 남산 국립도서관의 불빛도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굳이 내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하나라도 더 머리속에 집어넣으려는 열기가 밖에까지 전해져 오는듯 했다. 「있는 곳이 집」일 수 밖에 없는 최군과 그의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또다른 청소년들. 어느쪽이 과연「밝음」을 대표하는 청소년상일수 있을까.
환일고등학교 교사 정점길(요한ㆍ44세ㆍ수색본당)씨는『인간적인 삶을 추구할 기회가 전혀없는 것이 청소년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학생들의 상담을 맡아 누구보다도 그들의 문제에 가깝게 접근하고있는 정점길씨는『청소년들에게 사회가 비난하는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시인하면서『일부라고는 하지만 파급추세는 놀랄만큼 빠르다』고 우려했다.
그의 우려대로 청소년비행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 각종 연구보고서에서 일관성있게 지적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지난해 3월부터 5월사이 서울시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학교 주변(교내포함)에서의 비행 및 폭력에 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돈이나 물건을 빼앗는 갈취사고가 4천 1백여건을 비롯 협박ㆍ절취 등 모두 9천 4백여건에 달하고 있는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같은 기간동안 치안본부가 집계한 청소년범죄건수는 모두 2만 6천 99건으로 나타나(한국일보 84년 6월 10일字 참조)비행과 폭력이 교내외를 막론하고 발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점길씨는『학생들의 폭력ㆍ비행등 범죄는 매년 누적되고 있는 재수생 문제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잘라말했다. 『매년 70만명씩 배출되는 고교졸업생 가운데 겨우 23만정도만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고 나머지는 대학을 가기 위해 계속 머물러있는 실정이 청소년문제의 진원이 되고있다』고 정교사는 분석했다.
그는 또『정규수업외에 자율학습ㆍ보충수업 등으로 하루하루를 몰리고있는 재학생들의 경우도 문제발생의 씨앗을 안고있는 활화산』이라고 말했다.
『새벽5시부터 밤늦도록 소수의 선민(選民)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올바른 인성을 성숙시킬 기회가 도무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상담교사로서의 경험과 고3을 맡고있는 입장에서 분석되어진 그의 평가는『「배금만능주의」「권력제일주의」사회풍토가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부분에서 날카로와졌다.
『기성세대의 불의ㆍ부정ㆍ비리가 반복되어지는 동안「믿음」을 잃어버린 청소년들 역시 같은 길을 걷는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은 동성학교의 교목 곽성민신부도 마찬가지였다. 곽신부는『예의없는 가정、버릇없는 어른 틈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예의」를 강요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하고『선생에게 조차 인사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아주 간단한 예절조차 제쳐버린 가정생활、입시공부 외엔 그 어떤 것도 중요할 수 없는 학교생활、그리고 배울 것이라곤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풍토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이 인사를 하지않는 것쯤이야「우스운 문제」에 속할지 모른다.
『미성년자에게 성년이기를 요구하는 어른들이 미성년자처럼 행동하는 풍토속에서 어떤 인생관이 성립될 수 있겠느냐』는 곽신부는 正道를 따라 걷도록 이끌어주는 삶의 지도자가 없는 현실을 개탄했다. 『청소년 문제에 관한 언론의 보도내용이 사실과는 다르게 나쁜쪽으로만 과장돼 청소년들을 더 나쁜쪽으로 계도(?)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곽신부의 주장.
수년간 학원복음화를 통해 전인교육을 추구、동성학교의 분위기를 신선하게 조성해온 주역답게 곽신부는『청소년이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인과 다른 세대라고 지적、언론은 물론 학교ㆍ가정은 관용과 아량으로 청소년들의 작은 잘못을 큰 잘못으로 키우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도 분명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아픔ㆍ문제는 사회전체의 아픔이며 문제일 수 밖에 없다. 「문제 청소년」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문제사회」가 져야한다면 지역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교회가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관점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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