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신년부터 가톨릭신자 문인들을 초대 단편소설을 게재합니다. 장편에서 느낄수 없었던 신선한 감동을 독자여러분께 안겨드릴 것입니다. 이연재의 첫집필은「은빛깔의 작은새」「칸나의 뜰」등으로 독자에게 친숙한 구혜영 선생님(모니까ㆍ서울 반포본당)께서「재회」라는 제목으로 맡아주셨습니다. 작가 구혜영 선생님은「재회」를 통해 중년의 여주인공이 평소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해온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실체를 재인식해가는 모습을 그려보겠다고 밝혀주셨습니다.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난생 처음 해외여행 한번 해보려하니 웬 갖춰야할 서류가 그리도 많은지 알 수 없었다.
그날은 미회가 여행에 필요한 구비서류를 여행사에 건네줘야 하는 날이 었는데 마침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이라는 것이 왜 좀 문제가 되었는가 하면 미회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류를 갖추느라고 갖췄는데도 막상 그날 아침이 되어 챙겨보니 의당된줄로만 믿었던 재정보증인의 인감증명과 납세필증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미회는 당황하며 즉각 기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으레 기옥에게 그것을 맡겼으리라고 믿었던 것도 이쪽의 착각이었다.
『아니、진작 그럴 것이지、나 오늘은 오후에 손님이 오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장엘 막 가려던 참이었어』어이없어하는 옥의 대꾸에 덮어 씌우듯『얘、내것부터 해주고 장보러 가더라도 가야한다. 오늘、서류 내지못하면 나 이번 여행 가망이 없어져 버려. 너도 알지?』
마치 미회에게 인감증명이나 납세필증을 떼어주는 일을 기옥이가 게을러서 늦장이라도 피운듯、그리고 미회가 서두르는 이번 여행이 외국의 어느 대학의 개원교수로 가있는 남편의 부름을 받고 가는 것인데 그들 부부를 나라밖과 안으로 갈라놓은 장본인이 바로 기옥인양 들릴수도있는 그런 말투였다.
기옥은 어린동생이라도 어루만지듯『알았다. 아무튼 너의 생떼쓰는 버릇에 내가 번번히 맥을 못추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대신 증명서는 내가 떼더라도 니가 직접 우리 동네 동사무소로 가지러와야 한다. 알다시피 난 그길로 장보로가야 하니 말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간에 맞춰서 떼어만 주세요. 동회까지 내가 직접가는 거야 당연하지. 그럼 이따만나』
미회는 기옥이가 여전히 자신의 난국을 제대로 넘길수 있도록 불가결의 역할을 맡아준일이 고맙기도하고 한편 신통하기도 했다. 물론 기옥이가 미회를 위해서 떼어주는 인감이나 납세 필증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남편의 명의로 된 것이지만.
미회는 기옥과 약속한 대어 갈수가 없었다. 토요일인 탓으로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회는 기옥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빠개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손님을 초대해 놓고 시장에도가야하고 두루 바쁘기만한 주부 기옥은 지금쯤 약속한 증명서를 떼어들고 얼마나 조바심을 치고 있을까. 친하면 친할수록 그래서 억지부탁도 염치없이 강요할 수가 있지만 그런만큼은 서로 지켜야할 예의는 깎듯이 지켜야하는 법인줄 미회는 믿고 있었다. 미회가 허둥지둥 서동 동사무소로 당도했을때、그러나 미회가 예상했던 일은 불행중 다행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동사무소에도 예외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마침 저만큼에서 방금 떼어든 증명서를 들고 기옥이 웬 허름한 옷차림의 뚱뚱한 중년여인과 무어라 지껄이이며 걸어오다가 미회를 보자 달려들며『내 바로 앞에서 오전 접수가 끝나지 않겠니. 그런데 바로 앞에 계시던 이분이 양보해주셔서 네 여행에 필요한 증명서는 떼었다.』
『어머나 미안해서 어쩌죠?』
그러면서 미회가 그 낯선 여인을 정면으로 쳐다 봤을 때、잠시후 두 사람의 입에서는 거의 동시에 어머나! 소리가 튀어나오며 서로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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