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사회복지시설돕기 바자회 업무때문에 추기경님을 뵈러 집무실로 갔다.
항상 그러하시듯 따스하게 맞으시고는, 더운 날 수고가 많다 시며 냉커피를 특별히 청해 주셨다. 그런데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잔을 들다가 잔 받침이 떨어졌다. 당황한 김에 얼른 잡는다는 것이 커피까지 탁자 위에 쏟고 말았다.
추기경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듯 옆에 놓인 화장지를 뽑아주시며, “다친 데는 없는가? 나도 전에 그랬었는데” 하시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셨다. 그 말씀이 얼마나 따뜻하였던지, 바자회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으신 추기경님의 체취가 서린 소장품을 안고 나오며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추기경님을 더 가까이 뵈올 수 있게 된 것은 가톨릭사회복지회 나눔의묵상회 회장직을 맡으면서였다. 항상 어려운 이웃, 고통 받는 이웃을 염려하시는 추기경님께서 1985년 6월 “나눔을 생활화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해 보라”는 말씀을 하시어 시작된 것이 나눔의묵상회다.
‘참된 나눔은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내가 주고 싶을 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도 이웃이 필요할 때 나누는 것’이라는 추기경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2박3일의 피정을 통하여 본당과 시설에서 헌신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자들이 40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노숙인들의 고통이 안쓰러워, 심야에 노숙인들을 돌보고 있는 우리 회원들에게 그토록 감사하다시며 격려해주시고 도와주시던 추기경님은 참으로 나눔의 성자이셨다.
“이것을 보면서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줘요” 하시며 쥐어주셨던 열쇠고리에 담긴 추기경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추기경님! 이제는 하느님 품에서 편히 잠드소서.
주님! 추기경 스테파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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