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무겁습니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하느님 사랑을 전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여겨집니다.”
해외 한인교포 사제로는 최초로, 나라밖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사제로는 주 태국ㆍ캄보디아 교황대사로 사목하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에 이어 두 번째로 주교에 임명된 문한림 주교는 첫 일성으로 가난과 투신을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인근 산마르틴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문 주교는 1955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서울 성신중·고등학교(소신학교)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3학년 때이던 1976년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교포 1.5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으로 선출되기 직전까지 사목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소속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신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10월 12일 사제품을 받아 올해로 꼭 사제수품 30주년을 맞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남다른 인연이 이번 주교 임명의 배경을 되었음을 짐작게 하는 면이 적지 않다. 현 교황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신부가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돼 당시 문 주교가 있던, 교구 내 4개 지역 중 가장 가난한 플로레스지역 주교로 온 1994년부터 두 사제의 끈끈한 인연은 시작됐다.
“베르골료 주교님이 계시던 주교관이 제가 살던 곳에서 2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뵙기도 했습니다.”
가까이서 체험한 베르골료 주교의 변함없는 모습은 문 주교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당 사목 방문 때에도 특별한 대접 받기를 원치 않으셔서 몸소 가방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신자들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언젠가 주교관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침실에도 책 몇 권과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겸손과 가난이 몸에 밴 베르골료 주교의 삶은 고스란히 문 주교에게로 옮아갔다.
“가난한 이들과 살다 보면 가난해지지 않을 수 없어요.”
사제서품을 받은 후 문 주교는 단 한 번도 가난한 이들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 신부가 된 후 산카예타노본당 보좌를 거쳐 실질적인 첫 소임지가 가난한 이들이 몰려 사는 플로레스지역에 있는 알바레스시립병원 원목 사제였다. 병원을 찾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눈을 뜬 문 주교는 원목수녀의 필요성을 느껴 베르골료 주교에게 건의해 한국의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을 초빙해 병원사목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픔을 지닌 이들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하기도 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파하는 이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던 모양이다.
산카예타노본당 보좌신부 시절부터 문 주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본당에서 한국어가 서툰 한인 2세들의 교리교육과 고해성사 등을 맡아 한인 신자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지금도 어디든 마다치 않고 찾아다닌다.
본당 주임을 맡으면서는 소공동체 중심으로 사목을 펼치는 가운데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도입해 신자들의 변화되는 모습에서 복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특별한 교육 없이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을 따름입니다. 부활하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모습을 스스로 느끼고 주위에서도 느끼면서 신나는 신앙 체험을 소중한 결실로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주일미사라고 해도 전 신자의 3~4%인 250명 남짓한 신자만이 참례하고 있는 현실이어서 문 주교는 누구보다 교육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가없는 사랑은 때문일까, 문 주교는 그간 교구 사제로 현지인 사목뿐 아니라 모국인 한국교회와 라틴아메리카 지역교회간의 가교 역할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런 활동의 결실로 지난해 7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한국가톨릭선교사회(AMICAL·이하 아미칼)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주교로서의 새로운 몫이 주어지겠지만, 아미칼 활동을 통해 보편교회를 살찌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일까, 문 주교는 고국의 신자들에게도 자신을 위한 기도를 청했다.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잘 전할 수 있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 문한림 주교 약력
▲1955년 6월 16일 : 경기도 수원 출생 ▲1968~1974년 : 서울 성신중·고등학교(소신학교) ▲1974년 : 가톨릭대학교(대신학교) 입학 ▲1976년 : 신학교 3학년 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민 ▲1984년 :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신학교 졸업 ▲1984년 10월 12일 : 사제 수품 ▲1985년 : 산카예타노본당 보좌 ▲1988~1996년 초 : 부에노스아이레스 알바레스시립병원 원목 ▲1996~2002년 :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본당 주임 ▲2002년 : 이탈리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 석사 학위(영성신학) ▲2003~현재 :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본당 주임, ‘성 고스마와 다미아노’학교 이사장 ▲2003~2006년 :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플로레스지역장,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 참사회 위원 ▲2013~현재 : 라틴아메리카 한국가톨릭선교사회(AMICAL) 회장
▨ 아르헨티나 산마르틴교구는
문한림 주교가 보좌주교로 가게 되는 아르헨티나 산마르틴교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구에 속해 있다. 문 주교는 산마르틴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현 교구장인 귀제르모 로드리게스 멜가레호 주교가 70세의 고령이어서 문 주교에게 거는 교회 안팎의 기대가 적지 않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와 인접해 있는 산마르틴교구는 관할 지역 내 총인구 76만1000명 가운데 약 69%인 52만5000여명이 가톨릭 신자다. 교구 내에는 30개의 본당과 76개의 공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리교육을 할 수 있는 센터가 78개이며, 유·초·중등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센터 42개를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교구신부 33명, 수도회 소속 신부 45명, 종신부제 29명이 사목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수도자 143명이 다양한 영역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에 비해 교구 내에 한인 교포나 신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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