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연초를 거쳐 최근까지 한국교회에는 경사가 잇따랐다.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임명 염수정 추기경의 탄생과 함께 오랫동안 한국교회 전 신자들이 열망해 왔던 124위 시복 결정 소식이 그것이다. 아울러 교황청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올해 내 한국 방문이 공식적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보도 속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발표를 기다리는 신자들 국민들의 기대가 높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라보는 한홍순(토마스·70·서울 청담동 본당)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는 참으로 감회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6월 8일 주교황청 한국 대사의 공식 임명장을 받은 후 지난 2013년 11월까지 3년 5개월 여에 걸쳐 대사직 임무를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신자로서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사안들이 결실로 맺어지는 모습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 방한
124위 시복 결정과 관련해서 한 대사는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덧붙여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우리 신앙 선조들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마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124위 시복은 한 대사가 대사 재임 시절 교황 방한과 함께 우선적으로 역점을 두었던 사안이라고 했다. 바티칸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성성 장관 아마토 추기경을 비롯 인류복음화성 장관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시복시성 작업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힘을 쏟았던 부분이다.
“이제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도 빨리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현대의 순교자들의 시복도 빨리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 대사는 “사실 작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사임이 없었더라면 좀 더 일찍 시복 결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한국교회 신자들의 열렬한 소망과 기도 덕분”임을 드러냈다.
정부도 이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크게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적극 지원했던 면을 들려준 한 대사는 특히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분들이기에, 바로 그러한 숭고한 삶을 살았던 가톨릭교회 순교자들을 한국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고 했다.
“아무튼 교황님과 교황청이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고 각별한 배려를 하고 계신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한국과 한국교회가 아시아의 모든 백성이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라는 초대입니다. 특히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나서라는 권고입니다.”
교황 방한은 한 대사가 주교황청 대사 임명으로 공식적 활동을 시작하면서 ‘1순위’로 여겼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사실상 발표순서만 남겨 두고 있는 듯한 교황 방한 소식은 한 대사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 일 수 있다.
한 대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이루어지게 되면, 199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인도를 방문한 이래 교황으로서는 처음 아시아를 방문하는 것이고, 또 새 천년대의 첫 아시아 방문이기도 하다”면서 “이런 면에서 아시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을 방문한다는, 매우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유일하게 분단국으로 남아 70년 동안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찾아오는 것은 그 자체로 뜻깊은 일입니다. 이는 한국과 한국 국민들이 한민족뿐만 아니라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모든 민족들의 화해와 평화, 인간 존엄성 증진을 위해 일해야 할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교황 방한은 한국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성장하고, 또 사랑의 문화를 더욱 창달하고 정신문화의 격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 대사는 덧붙였다.
그 외에도 “한국교회가 더욱 새로워져 자신과 사회와 한민족 전체를 복음화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더 나아가 아시아의 복음화 주역으로 앞장서는 일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게 한 대사의 생각이다.
특히 교황 방한이 8월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기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 한 대사는 “교황의 한국과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은 이들로 하여금 아시아 복음화의 주역으로 투신하도록 하는 일을 촉진하며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이 청년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이들이 사회 발전에서 맡아야 할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분위기를 조성에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예수님 태운 당나귀
지난 2010년 주교황청 한국대사 임명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교회 내외에서는 ‘준비된 대사’라는 격려가 이어졌었다. 그런 배경에는 1984년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된 후 계속 재임되면서 최장수 평신도평의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력과 함께 1987년 1998년 2008년 세 차례, 세계주교시노드에 옵저버로 참석하는 등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평신도로 활약한 내용이 기록된다. 또 한국교회 내에서도 제16대 17대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2006~2010년)을 역임했던 것은 물론 그에 앞서 10여 년 넘게 서울 및 한국 평협 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고, 주교회의 정평위 상임위원, 평신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교회 평신도 활동의 중심에 서왔던 부분이 자리하고 있다.
아시아평신도대회를 준비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정부로부터 ‘통보’를 받고는 ‘예수님을 태우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영광을 맞은 당나귀 심정이었다’는 한 대사.
“예수님을 태웠던 당나귀처럼 ‘주님께서 필요하시다’는 생각으로 순명하는 마음으로, 영광으로 받아들였죠. 그런 한편 ‘주님을 어떻게 모시고 가야 하나’ 싶은 ‘부담’도 컸습니다.”
한 대사는 3년 5개월 여의 대사 기간 동안 늘 ‘임기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여력을 쏟았다고 했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한국교회를 알리기 위해’ 공식적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백방으로 발로 뛰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교황청 외교사절단의 아시아 그룹 단장으로도 추대돼 한국교회는 물론 아시아지역 교회 인지도를 높이는 부분에도 애를 썼던 한 대사는 그같은 활동 속에 외교사절단 내에서 ‘바티칸 인사이드’(Vatican Inside)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단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항상 지니고 있던 꿈이 있었어요. 임기를 마칠 적에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했던 바오로 사도의 그 말씀을 바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좀 더 최선을 다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여한이 없다”는 소회를 남겼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도구’
모태 신앙을 지녔던 한홍순 대사는 ‘매 순간 감사’ ‘겸손’을 입버릇처럼 가르쳤던 어머니의 신실한 가톨릭 교육 속에 성장했다. 그러한 신앙적 밑거름 속에서 중학교 시절 시작했던 소년 레지오 활동은 ‘부르심에 준비된 도구로 응답’하는 자세를 몸에 배이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레지오 주회를 할 만큼 열심 했던 한 대사는 “레지오를 통해 신앙생활에 도움을 얻은 것 뿐 아니라 ‘성모님 군대’로 일을 할 때 안 되는 일이 없음을, ‘당신의 도구입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의 기도로 성모님을 믿고 신뢰할 때 두려울 것이 없음을 체득했다”고 밝힌다.
대학 시절을 거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된 것도 ‘신앙’으로 풀이한다.
“대학교 시절부터 학문과 신앙의 길을 통합하고 싶었던 참에 새무얼슨의 경제학 원론을 읽다가 레오 13세 교황의 ‘노동 헌장’이 언급돼 있는 것을 봤죠. 그길로 미국인 선교사였던 본당 보좌 신부님을 찾아 영어 원본을 구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진로를 정하게 됐고 로마 유학길에 올랐어요.”
로마 유학 시절에도 현지 한인공동체 활동 등을 통해 신앙과 생활의 연결 고리를 놓지 않았던 한 대사는 1984년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되면서 한국교회 평신도 활동에 직접적으로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40대 나이에 본당 총회장(서울 청담동 본당)을 맡기도 했던 그에게 그 모든 것은 ‘시켜주는 대로 응답하는 순명’이었다.
평신도는 ‘객’이 아니다
30년 동안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을 맡고 있는 한 대사에게 ‘평신도’와 관련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대를 짊어져야 할 올바른 평신도 상에 대해 묻자 한 대사는 우선적으로 ‘주체 의식’을 강조했다. “올바른 신앙, 교회 의식을 갖고 능동적 자율적으로 교회 안에 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 ”이라는 것이었다.
“평신도는 ‘객’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내적 성숙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성숙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평신도들도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평신도들이 올바른 신앙 의식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자세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때 생활 현장의 복음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대사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야 교회 안에서도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30여 년의 교회 활동 속에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로서는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던 200주년 사목회의’,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총회를 포함 세계주교시노드에 세 번이나 참석 세계 교회의 방향을 논의하는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등을 꼽은 그는 1989년 세계성체대회 서울대교구 시노드를 비롯 굵직한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앞장설 수 있었던 점도 행복하다고 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교회와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이 곧 인생이고 삶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하느님의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한 대사는 교황청 요청으로 현재 ‘회고록’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그간 하지 못했던 일, 읽지 못했던 책들 살피면서 그간의 일들을 반성하고 회고할 계획’이라는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늘 마음에 되새기고 있다는 성경구절을 들려줬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이었다.
한홍순 전 주 교황청 한국 대사는 …
학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1961)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1965)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교 경제학 박사(1971)
주요 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1972~2008)
-주 교황청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2010~2013)
-교황청 재무심의처 국제감사위원(2008~2010)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2006~2010)
-한국 외국어 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부 명예교수(2008년 9월~현재)
-교황청 평신도 평의회 위원(1984~현재)
주요 수상 내역
-성 대 그레고리오 기사 훈장(교황청)(1995)
-푸렌대학 명예 법학 박사(대만)(2002)
-이탈리아 친선공로훈장(이탈리아)(2007)
-녹조근정훈장(2008)
-비오 9세 대 십자 훈장(교황청)(2013)
-국제 보니파시오 8세 상(이탈리아)(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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