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 친구들보다 ‘짧게’ 군생활 하는 군종병이 있다. 짧게 군생활 한다고 하면 먼저 ‘특혜’를 받았나 궁금증이 인다. 아무런 특혜도 없다. 이유는 친구들보다 10년 이상 늦게 입대해서다. 군종교구 수도군단 충의본당(주임 정태화 신부)과 예하 51사단 전승성당에서 군종병으로 복무 중인 손호준(시메온) 상병의 이야기다. 손호준 상병은 2012년 10월 30일 입대했다. 1981년생인 손 상병의 입대 나이는 32세로 입대 동기와 비교하면 10~12살이나 많다. 나이로 보면 입대 동기들에게 ‘큰형’ 뻘이다. 군 복무 기간이 과거에 비해 점차 짧아지다 보니 동갑 친구들은 26개월간 군생활 마치고 사회로 일찌감치 나왔지만 손 상병은 2014년 7월 29일까지 21개월을 복무하게 된 것이다.
군대 가려고 미국 영주권 기권
손 상병은 미국 영주권자였다. 합법적으로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인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어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인이 됐다.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재력가 자제들의 씁쓸한 군면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뉴스거리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군대에 안 가도 되는데 자발적으로 입대했다면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듯싶다.
손 상병은 대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학교생활을 하고 1997년 8월 25일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에서 고2로 편입했다. 가족 모두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것도 1997년이었다. 그 전에는 초등학교 4학년 1년 동안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는 아버지 권유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영어와 미국 문화를 익힌바 있다.
영주권 취득 후 미국 보도인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2012년 4월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전공은 공중보건학으로 의학 정책 및 경영을 공부했다. 군복무 중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2편의 논문을 발표, 세계적 학술지 ‘CID’ 등에 게재할 정도로 학구열은 식을 줄 몰랐다.
손 상병과 가족 모두가 영주권을 포기한 것은 2008년 여름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며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고 2009년 입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제 성소를 고민하고 있던 손 상병은 불의의 손목 골절 사고로 군입대를 연기하게 되면서 2009년 4월 지금의 아내를 만나 사제 성소와 결혼 성소 사이에서 결혼 성소를 택하고 2009년 12월 27일 결혼했다. 비신자였던 아내는 손 상병의 진실한 신앙적 권유로 결혼 1달 전 세례를 받았다. 3년 간의 결혼생활 후 박사과정을 수료한 손 상병은 32살에 영주권을 포기한 이유였던 군대에 가게 됐다. 아내도 “군대에 갔다 와야 진정한 남자”라며 손 상병에게 용기를 줬다.
▲ 군종교구 충의성당 성모상 앞에 선 손호준(시메온) 군종병.
목관악기병에서 군종병으로
손 상병이 육군 51사단에 입대해 5주의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처음 배치받은 곳은 군악대였다. 중3때부터 배운 클라리넷 연주 실력을 알아본 군악대장이 신교대에 찾아와 미리 손 상병을 목관악기병으로 점찍어 놓았다. 국내에서 취미 정도로 배우던 클라리넷은 미국 유학을 하면서 그 매력에 빠져들어 음대 전공 수업까지 들으며 수준급 실력으로 연마됐다.
군악대에서 나이 어린 일부 선임병들로부터 나이 많은 후임병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받아 힘든 시간도 없지 않았지만 성당에 가는 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했다. 군악대에서 복무하던 중 신학생 군종병을 도와 주일에만 군종병 업무를 맡는 ‘대대 군종병’이 됐고 2013년 9월에는 상주 군종병이 됐다. 그리고 올해 1월에는 충의본당 정태화 신부가 본당 새해 설계를 하면서 손 상병의 파견을 요청해 현재는 충의본당 군종병으로 일하면서 주일마다 원 소속인 51사단 전승성당을 찾아 훈련병들을 신앙으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번호로만 불리는 훈련병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인격적으로 그들을 대하려 노력한다.
손 상병의 가장 중요한 주일 일과 중 하나가 훈련병들에게 클라리넷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성가와 클래식 연주 은은하게 감돌면서 전승성당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보람을 느끼곤 한다.
영주권 포기 후 군입대, 군악대 목관악기병에서 대대군종병과 상주군종병을 거쳐 파견 군종병으로 짧은 군생활 동안 드라마 같은 군대 이야기를 써가는 손 상병은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로 신자로서 군대에 와 최상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이 음악적 재능으로 큰 감동을 주었듯이 자신도 군악대에서 악기연주로 다른 병사들과 교감하기 원했으나 군종병으로 신부님을 돕게 된것이 “그냥 이제 즐겁다”고 했다.
▲ 신병교육대에서 군악대 목관악기병으로 차출될 만큼의 클라리넷 실력을 갖춘 손호준 상병이 전승성당 장병들에게 클라리넷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군종신부가 바라본 손 상병은…
정태화 신부는 손 상병에 대해 “하나를 부탁하면 열을 해내는 군종병, 신앙적 감각이 출중한 군종병, 군종신부로서 만난 평신도 군종병 중 단연 최고의 군종병, 신학생 군종병에 뒤지지 않는 군종병”이라며 “관할 부대 내 군종병들의 업무 체계화와 본당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파견을 요청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