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르 10,44-45)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 2월 22일, 19명의 새 추기경 서임식이 거행됐다. 새로운 추기경 탄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각국 축하사절단과 신자 1만여 명으로 가득 찬 대성당에 한국교회 세 번째 추기경 염수정 추기경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한국을 매우 사랑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1시간 15분간 거행된 서임식은 새 추기경이 교황 프란치스코 앞에 무릎을 꿇고 주케토(성직자들이 쓰는 원형의 작은 모자)와 비레타, 추기경 반지 및 칙서를 전달받는 순간 절정에 달했다. 19명의 추기경 중 염수정 추기경은 열두 번째로 호명됐다.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 추기경을 깊게 포옹한 교황은 다른 추기경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하며 한국교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표출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한국을 매우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염 추기경에게 전달했다. 이어 염 추기경은 “한국인들도 교황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으며, 또 그런 마음으로 추기경으로서 교황님을 도와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서임식에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예식 시작 20분 전 성당 안에 입장한 베네딕토 16세를 향한 신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로써 두 명의 교황이 함께한 가운데 열아홉 명의 새로운 추기경이 탄생했다.
◎…오전 11시에 시작되는 서임식 몇 시간 전부터 성당에 입장하려는 신자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이번 서임식은 2006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던 정진석 추기경 서임식 때와는 달리 대성당에서 진행된 덕분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간소하게 봉헌됐다. 그렇다고 신자들의 기쁨과 환희는 장소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성당에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광장에 설치된 스크린을 보면서 자국 추기경의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마다 환호했고, 성당 안의 신자들은 거룩한 미사 중 기도로써 기쁨을 표현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훈시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앞에 서서 걸어가고 계신다”며 “늘 길 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철학이나 관념을 가르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걸어갈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그분의 제자로서 주님과 함께 머물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며 기쁨의 근원”이라고 덧붙였다.
서임식 추기경 대표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이날 예식에서 “‘감사’와 ‘여기 제가 있습니다’로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님께서 추기경 임명 후 보내주신 편지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추기경직은 시야와 마음을 보다 넓혀야 하는 봉사의 자리로, 종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주님의 길을 따를 때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청한다”고 전했다.
◎…서임식 다음 날인 23일 오전 10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추기경 서임 축하 미사가 교황 프란치스코와 19명의 새 추기경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됐다. 이날 교황은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에 대해서 험담하는 이를 축복하며 그들에게 환한 미소로 다가가야 한다”며 “위선을 벗고 성령께서 이끌어주시길 기도해야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에서는 로마 한인본당 신자인 황재원(로사·18)양이 한복을 입고 한국어로 보편지향기도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황양과 함께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필리핀어(타갈로그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이 보편지향기도에 참여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22일 서임식 전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16일 로마에 도착 후 개인피정과 추기경 회의 등에 참여한 염 추기경은 서임식이 끝나고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교황청 인사 및 순례객들의 축하 예방을 받았다. 추기경 양옆에는 지난 2월 5일 주교품을 받은 유경촌, 정순택 보좌주교가 서서 손님을 맞았다.
이어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한국정부 대표단 축하 만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정부 대표로 서임식에 참석했던 조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비롯 한승수(다니엘) 전 총리 등이 함께했다.
23일 오후 5시에는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에서 로마 한인들과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했다. 염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추기경 서임을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서임식을 전후해서 여러 추기경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냐고 물어봤는데, 여러분은 제가 행복해 보이는지 궁금하다”라고 물어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이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염 추기경은 이에 앞서 은사인 예수회 총원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 초청으로 로마 예수회 총본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염 추기경은 서임식 하루 전인 21일 교황청 내 바오로 6세홀에서 열린 추기경회의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전하며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강복해 달라”고 청했다.
이어 23일 로마 한인들과 봉헌한 주일미사 강론을 통해 남북의 화합과 평화를 당부한 염 추기경은 “교황님과 추기경들에게 추기경단 회의를 통해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했다”며 “우리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일치,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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