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예능’이 뜨고 있다.
특정 공간과 과제, 인간관계를 정해 놓고 출연자들의 반응과 행동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돌고 도는 유행을 따라 토크쇼, 오디션 프로그램이 기세를 높인 적도 있었지만, 이 장르의 원형 격인 MBC <무한도전>, KBS2 <1박 2일>은 10년 가까이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 자리를 지켜 왔다.
과거의 관찰 예능이 출연자들의 노력을 부각하는 성취 중심의 기획이었다면, 최근의 관찰 예능에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였던 이들을 한 울타리로 묶어 인간적 교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MBC <아빠 어디가>의 출연자들은 아빠-자녀로 구성된 이웃 공동체다. MBC <진짜 사나이>의 병사들과 SBS <정글의 법칙>의 ‘병만족(族)’은 병영과 정글에서의 극한체험을 통해 동지애를 키운다.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들을 ‘공동체 예능’이라고 불러보자.
일요일 저녁의 공동체 예능으로 흥행에 성공한 MBC는 비슷한 프로그램을 늘렸다. 싱글 남성들을‘무지개 회원’들로 묶은 <나 혼자 산다>, 시골 마을 어르신들과 남녀 방송인들을 가상 부모-자녀로 맺어주는 <사남일녀>가 그것이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공중파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tvN의 여행 버라이어티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도 서로를 재발견하며 감동하는 출연자들의 인간적 면모가 화제가 됐다.
만나고 싶고 모이고 싶은 소속의 욕구는 관계의 단절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빠 어디가>의 출연자들이 고백한 대로, 가족을 먹여살리느라 바쁜 아빠는 아이들에게 멀고 무서운 존재가 돼버렸다. 날로 늘어나는 1인 가구주들에게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준거집단이 필요하다. 어색하게 마주치고 눈시울 붉히며 헤어지는 <사남일녀>의 만남에서처럼, 시골 어르신들이나 도시 젊은이들이나 사람의 온기가 그립기는 매한가지다.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경험(여행, 극한체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터놓기 좋은 기회다. 이웃을 알아가고 배려하면서 사람은 남을 사랑할 능력을, 나의 사랑스러움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만남과 갈등, 상호 이해와 성장을 긴 호흡으로 보여주는 공동체 예능. 그러나 훈훈한 감동의 뒷맛은 개운하지만은 않다. 방송인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의 귀한 경험과 속을 터놓을 친구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동체의 경험은 방송 출연 계약을 매개로 거래되는 상품인가. 시청자들은 공동체 예능을 보며 ‘힐링’된다고 말하는데, 방송으로 가공될 수 없는 일상에는 힐링의 실마리가 없는가.
감시 카메라에 둘러싸인 동네, 보안장치로 무장된 집 안에서 하나 됨의 환상을 소비하는 현대인들. 하느님은 믿어도 이웃은 믿지 못하는 각박한 세상. TV 속 가상 공동체의 대리만족에 머물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교회는 참된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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