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선생님 한 분이 다가와 묻는다. “신부님, 이번 주일 미사는 못 나올 것 같은데 혹시 관면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주일미사는 신부가 관면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물으니, 결혼 10주년 기념 부부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미사까지 빠지는 여행 조용히 다녀올 것이지….’ 젊은 신부 마음에 염장을 지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일 그 선생님이 미사에 나왔다.
여행 첫 날, 저녁까지 잘 먹고 오붓한 시간에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사랑은 무슨 사랑?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하는 통에 대판 싸우고 그날로 올라왔단다. 순간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해 살다보면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투기도 하고, 시간이 흐른 뒤 권태기도 맞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백년해로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다.
신부들도 사제품을 받고 나면 보좌생활을 시작하는데 신부들 사이에서는 이를 시집살이에 비한다. 그렇게 몇 년간의 시집살이를 청산하고 첫 주임으로 나갈 때가 가장 설레고 열정이 가득하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이 나고 그 소식에 많은 신자분들이 서운해 하며 간혹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보면, ‘내가 정말 이곳에서 잘 살았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또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 횟수가 늘면 신부들도 서서히 알아간다. 떠나가는 전임 본당 신부를 위해 흘리던 눈물이 한 시간도 안돼 새 신부를 맞는 미소와 환영의 박수로 바뀐다는 것을. 이처럼 신부들도 서서히 권태기에 빠져 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를 잘 극복해야 사제로서 살아갈 새로운 힘과 보람을 얻게 된다.
평생을 함께 할 부부 사이에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면 점점 더 서로 멀어지게 마련이다. 신부들도 신자들과 멀어져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 때 권태기를 맞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르 12,31)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제가 교우들을 제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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