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성교예규」는 로마예식서의 빛 안에서 충실히 머물면서도, 지역교구의 풍습을 존중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정신을 반영한 현행 「상장예식」의 모본(母本)으로 불릴 만큼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과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장례에 있어서, 한국의 독자적인 토착화 전례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한국교회사의 큰 획을 긋는 작품임을 문헌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문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른 외국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평신도 스스로가 ‘천주학’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를 자리 잡게 한 시작부터 토착화된 전례예절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텬주셩교례규」(이하 천주성교예규)는 연도(위령기도)를 포함해 현재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장례예절서인 「상장예식」의 뿌리가 되는 예식서다. 「천주성교예규」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의 지도 아래 만들어져 공인된 후 대중적으로 활용돼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중국교회의 「성교예규」를 축약한 것 또는 단순히 번역한 것이라고 인식이 만연했었다.
허윤석 신부(의정부교구)는 로마예식서를 기준으로 「천주성교예규」에 관한 문헌학적 비교연구를 13여년에 걸쳐 해냈다. 그 결과 한국의 장례예절이 중국에 비해 로마예식서에 더욱 충실하면서도 토착화신학을 담아내고 있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허 신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낸 논문 ‘1614년 「로마예식서」에 비추어 본 「천주성교예규(1864)」의 장례에 관한 고찰’로 지난달 가톨릭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을 통해 허 신부는 “「천주성교예규」는 유교 전통 장례예절의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보편교회가 제시하는 표준예식서를 ‘평신도 중심의 예절서’로 재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천주성교예규」는 효의 전통을 풍요롭게 드러내고, 장례예식을 일상기도로 승화시켜 기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했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허 신부는 조문예절시 바치는 기도문은 중국교회의 「성교예규」와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이 기도문은 신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바칠 수 있도록 일상기도를 담은 성교공과에서 파생됐으며, 성당에서 전례를 진행할 수 없는 예외규정까지 통달해 담은 것이 특징이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어져온 밤샘 기도 형식을 유지하면서,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결속을 도모하는 데에도 공헌했다. 한국교회 장례예절에서만 볼 수 있는 ‘도묘예식’에서는 사제가 아닌 유가족 등이 ‘빛의 도열’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평신도들의 역할을 더욱 능동적으로 드높인 사례다. 아울러 허 신부는 “우리 기도문에는 연옥도문 즉 성인호칭기도가 포함돼 있는 것이 큰 특징”이라며 “사제·주교 서품식이나 시복·시성식 등에서만 봉헌하는 장엄한 이 기도를 장례예절에 포함한 것은, 우리 순교자들의 업적과 그 영광을 드높이고 통공교리를 확산하도록 배려한 다블뤼 주교님의 뜻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의 장례 관련 기도는 형태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순교적 삶을 되새기고 기도를 생활화하는데 탄탄한 뒷받침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의 문헌비교학적 연구들이 이어져 특히 순교정신의 뿌리를 온전히 밝히고 지지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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