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가 있는 곳에서 교환과 소통 -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변화한다. 이를 ‘비단길의 법칙’이라 해두자.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뉴미디어 시대는 바로 이 비단길의 법칙을 증명하는 시대다. 여기서, 소통의 양(量)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술이나 미디어가 관계와 교환 - 소통의 양을 무한대로 증가시킨다면, 그 매체의 ‘박동’으로 인한 에너지의 양과 변화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인터넷’에 대해 생각해 볼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양(量)’의 차원이다. 인터넷은 전통적인 미디어가 보여준 ‘일대다(一對多)’의 대량전달을 아주 쉽게 가능케 한 것은 물론이고, 그 특유의 기술적 장점을 통해 일대일의 관계형성(혹은 소규모의 관계망 형성) 또한 손쉽게 이루어 주었다. 인터넷 공간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루어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호작용과 관계의 양을 생각해 보자. 물론 그 관계의 질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상호작용과 관계의 양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매체 안에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탄생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양적인 팽창 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가능성을 지적했던 철학자 헤겔의 영감적인 통찰은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양의 관점에서 뉴미디어를 관찰할 때 간과할 수 없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터넷 댓글이다. 어떤 의미에서 댓글은 ‘의견의 대량생산’이다. 의견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량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한다. 이건 근본 상수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의 존재가 곧 대량의 의견으로 ‘현상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의견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생산의 도구’와 사회-정치적인 합의가 필요한데,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는 생산도구와 기술의 결여로 말미암아 의견의 대량생산이 매우 어려웠다. 대중의 의견이란 주로 시장통 어느 구석에서 소리와 의미로 떠도는 것이었지, 특정의 매체 속에서 확인 가능한 형태로 문자화된 것은 아니었다. 뉴미디어의 기술적 장치들은 바로 이 점에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와 기술적 장치들은 즉각적인 의견의 표명인 댓글을 가능케 했고, 인터넷 안에서 촉발된 엄청난 양의 상호작용이 댓글의 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이제 대중의 의견은 잠재적 목소리에서 가시적인 형태의 의견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의견의 ‘대량생산’이란 말 속에 함축되어 있듯이, 대량으로 생산된 의견은 어떤 표준화된 형식-예컨대 일정한 글씨체와 글씨크기, 혹은 글자 수-을 전제로 하며, 이런 전형화된 형식 속에서 생산된 댓글은 쉽게 익명화된다. 그러나 익명화된다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량으로 생산된 의견은 흔히 펄펄 끓는 한 덩어리의 ‘여론’으로 결집되어 중요한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물론, 그 결집의 속도와 ‘온도상승’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해, 댓글의 파괴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어떤 필연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엄청난 양과 속도를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의견의 덩어리들은, 필연적으로 ‘뜨거운 쇳덩어리’에 가깝도록 태어난 듯하다.
1999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됐으며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교에서 ‘매스컴과 종교의 관계 연구’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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