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황 문헌은 서론과 결론 사이에 네 가지의 주제로 본론을 써 내려 간다. 그 내용들은 현대사회 안에서의 가정의 모습,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그리고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등이다. 여기서 특별히 중요한 부분은 혼인과 가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에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부부와 부모 그리고 자녀로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거룩한 생활’과 ‘복음화된 가정’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나고, 거룩하게 성화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화되는 공동체인 것이다.
1. 하느님의 계획이 드러나는 가정
교황은 “역사의 이 시점에서 가정은 그것을 파괴하거나 또는 어떤 모양으로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는”(3항) 사실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교회는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다”(3항)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10항)라고 부연하여 설명한다.
그래서 ‘가정 공동체’ 13항에서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사랑과 아울러 자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를 당신 몸에 일치시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인의 본래 진리, 곧 “처음”의 진리를 밝혀주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10,6-8)라고 가르치셨다. 참으로 혼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아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11항) 안에서 완성된다.
교황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혼인한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이는 징표가 되어야 합니다”(14항)라고 가르친다. 결국 부부애의 살아 있는 표상이며, 영원한 일치의 상징인 자녀들은 부부가 자신들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획을 겸손되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각 가정이 “본연의 것이 되어라”(17항)는 자신의 사명을 다시금 자각하도록 한다. ‘가정 공동체’ 17항은 본연의 가정이 살아야 할 네 가지를 “인간 공동체의 형성, 생명에의 봉사, 사회발전에의 참여, 교회의 삶과 사명에의 참여”라고 명시하고 있다.
2. 성화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 가정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를 성화할”(55항) 소명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에 따라서 모든 남편과 아내는 “혼인 생활을 거룩하게 하도록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불린 것”(34항)이라고 교황은 일깨워준다. 때문에 부부는 매일매일의 사건, 문제, 어려움, 상황 등을 통해서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께서 그들이 “계속 혼인 안에 머물도록 부르시는”(51항) 초대에 성화된 모습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가정 공동체’ 56항은 혼인성사야말로 “그리스도인 부부와 가정을 위해서는 성화의 특수 원천이며 본래의 수단”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혼인성사는 단지 신자로서 교회법을 준수하려는 선택이 아니라, 성덕에로 불린 그리스도인 부부가 자신들의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성화되게”(56항) 하는 간과할 수 없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성화 역할은 세례성사에 그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밀접히 연결되어있는 성체성사에서 최상의 표현을 발견한다”(57항)고 강조한다. 결국 그리스도인 가정은 혼인성사로써 성덕의 삶을 향한 씨앗을 뿌리고, 성체성사로 양육되어 거룩한 열매를 맺게 된다. 이렇게 될 때에 그리스도인 부부는 매일매일 “더욱 풍요로운 일치를 향하여 진보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받은 사랑을 교회와 세계에 드러낼 수 있게”(19항)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는 사랑으로 규정된다”(17항)고 교황은 가르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다. 부부는 그 사랑을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게 되는”(14항)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신들의 혼인과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보여주셨던 사랑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래서 “부부애가 내재적으로 지향하는 그 완성에 도달하면 부부애덕”(21항)이 된다.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는 혼인성사를 통해 맺어진 그리스도인 가정이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성화할 소명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반포4동본당이 혼인과 가정의 참뜻을 새기자는 취지로 마련한 ‘혼인·가정 축복 예식’ 모습.
3. 복음화의 자리인 그리스도인 가정
‘가정 공동체’ 52항에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 안에서 성숙하는 만큼 복음화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라고 장엄하게 선언한다. 그 이유를 43항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가정은 사회를 인간화하고 인격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고 원초적인 장소입니다. 가정은 특히 미덕과 가치를 보호하고 전수함으로써 인생을 진정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세계 건설에 창조적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황은 그리스도인 가정이야말로 더욱 독창적이고 특수한 양식으로, 즉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50항)로서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사명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혼인성사로써 부부와 부모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며 동시에 ‘사랑과 생명의 선교사”(54항)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가정과 힘을 합하여 “특히 도움과 후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정들, 가난한 이들, 병약자, 노인, 장애자, 고아, 과부, 버림받은 배우자, 미혼모, 곤란한 처지에서 인공유산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임신부 등을 위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애덕을 실천”(71항)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참으로 가정이야말로 “전체교회의 맥락 안에서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로서의 자리를 차지”(53항)한다. 이 모든 것을 위하여 가정의 복음화는 최우선적이다.
‘가정의 교황’이라도 불리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와 더불어 1988년 발표한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과 1994년에 서명한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가정과 혼인에 대한 가르침을 아주 명확하게 정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교황의 통찰은 ‘한 처음’에 시작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계획이 ‘미래/종말’까지 ‘가정과 혼인’ 안에서 항구하게 계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황은 “가정은 교회의 길”(86항)이라고 천명한다.
정연정 신부는 1993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수품됐다.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총무, 우면동본당 주임, 로마 한인신학원 재정담당으로 봉직했으며, 로마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 요한 바오로 2세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