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 법원리본당 소속 갈곡리공소(칠울공소) 공소회장 조병현(베드로·80)씨에게 사순시기 재의 준수는 몸에 익은 습관과도 같은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또 그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단식재와 금육재를 잘 지키라는 당부를 끊임없이 들어 왔어요. 사순시기에 재를 지키는 것은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갈곡리공소 지역은 19세기 말 홍천과 인근 풍수원 등에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이들이 정착해 살면서 교우촌으로 형성된 경기 북부지역 신앙의 요람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씨는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을 지키며, 일상의 신앙생활을 체득해왔다.
“지금은 이곳 공소에서 매월 한 차례만 미사가 봉헌되지만, 이곳은 박해시대부터 신앙선조들이 살았던 곳이기에 뿌리 깊은 신앙의 전통을 갖고 있어요. 그 전통에 맞갖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켜온 단식재와 금식재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요.”
잠시 쉬어간 적도 있지만, 반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공소를 지키며 공소회장을 맡아온 것도 탄탄한 신앙의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령회장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곁에서 함께해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사순시기의 신앙생활 또한 일상의 실천으로부터 비롯됐다.
“사순시기 동안 단식재를 실천하며, 각 가정마다 애긍미를 모았지요. 각 가정에서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씩 쌀을 덜어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아두는 것입니다. 다들 어려운 살림에도 쌀 모으기는 잊지 않았어요. 모인 쌀은 갑작스레 상을 당한 빈곤한 가정이나 병으로 고통 받는 이 등을 위해 쓰도록 했지요. 또, 일부는 성모회를 통해 판매한 이윤으로 본당과 공소를 돌보는데 사용했어요.”
사순 저금통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이 같은 쌀 모으기 운동을 계속했다. 덕분에 조씨를 비롯한 공소 식구들은 매 사순시기 마다 각자의 희생과 나눔이 이웃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랑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경험했다.
“사순 저금통은 쌀 모으기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지금도 하루하루 내가 먹을 식사 한 끼의 돈을 계산해 사순 저금통에 넣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이것도 모이면 큰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공소와 신앙생활의 의미가 퇴색돼가는 요즘, 조씨는 이번 사순시기에도 신앙선조로부터 이어오는 일상에서 체득한 그대로의 신앙생활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번 사순기간에도 열심히 성로신공(십자가의 길)을 바쳐야겠지요. 특별한 지향이 있기보다 일상의 꾸준한 기도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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