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순교성지에서의 삶이 8년째 이르렀을 즈음, 젊은 나이에 한 곳에 오래 있으면 그 생활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라 한 곳에서 안주하는 생활을 벗어나고자 언어연수를 신청했다. 주교님께로부터 갈만한 곳을 알아보라는 허락을 받고 수소문 중이던 어느 날, 갑자기 중국파견이 결정됐다. 영어권의 언어연수를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민족화해위원회 일로 출장은 자주 다녔어도 중국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고 또한 먼저 파견된 사제들을 통해 중국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에 나가 살아보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해외에서의 삶이 편하지 않다는 뜻이다. 사제들도 마찬가지다. 잠깐의 여행이 아닌 삶을 위해 해외로 파견된다는 것은 한동안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일단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야 하고 낯선 환경을 극복해야만 한다. 특히 중국은 외국인에게 선교의 자유가 없으며, 허가된 장소 외에는 어떠한 종교행위도 허용되지 않는 곳이 아닌가? 역시나 처음 생활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사제로서 아쉬움 없이 자신감을 갖고 살았지만 언어의 장벽 앞에서는 그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평일미사는 매일 벽을 바라보며 혼자 드려야 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 처해보니, 많은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했던 본당에서의 일들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기를 마시면서도 때때로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많은 일들이 피하고 싶은 십자가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행복임을 깨달을 때, 사순절을 지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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