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으로 살자. 죽을힘으로.”
아들과의 말다툼 끝에 다시 이영숙(72·가명)씨는 아들을, 아니 마치 스스로를 다독이듯 말했다. 단 둘뿐인 가족이지만 요새는 말다툼이 부쩍 늘었다. 이씨도 이씨의 아들 영석(25·가명)씨도 어느새 “죽고 싶다”는 말이 입에 배버렸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다시 “죽을힘으로 살아보자”고 되뇌고 있다.
20여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아들을 키워 대학을 보냈다. 늦은 나이에 생긴 자녀였기에 낳기도 키우기도 어려웠고 다리 관절장애가 있어 거동도 불편했지만 삶을 포기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도무지 글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말을 기억할 수가 없어 더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치매초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석씨는 척추분리증으로 오래 일을 하면 심한 통증을 겪는 신세가 됐다. 영석씨가 미성년자였을 때는 국가보조금을 받아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국가보조금도 끊겨 영석씨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오는 형편이다.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영숙씨 모자는 신앙을 놓지 않았다. 원래 불교신자였던 영숙씨는 지인의 입교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꿈속에서 광채가 나는 성모님의 형상을 보고 입교를 결심했다. 그 후로도 어려운 고비마다 꿈속에 성모님이 나타나 힘을 주곤 했다. 그래서 레지오나 파티마의세계사도직 등 사도직단체 활동을 이어왔고 묵주기도에 열심이었다. 영석씨 역시 어려운 중에도 청년 레지오 단원으로서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기도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손은 빌리지 않으려 했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빌려온 돈이 이미 수 천만 원. 월세도 몇 달째 밀려 이대로는 거리에 나앉을 상황이다. 영숙씨의 치매약에 영석씨의 약 등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약값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영석씨에게 정신적인 질환의 징후가 보이고 있어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지만 치료는커녕 검사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내일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삶을 이어가는 영숙씨지만 그의 걱정은 오로지 아들 걱정뿐이다. 영석씨가 걸핏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에 맺힌다.
“학생 때는 친구도 잘 사귀고 공부도 곧잘했는데,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몰라 답답하다”는 영숙씨는 아직 꽃샘추위가 한창인데도 싸늘한 냉골에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초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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