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 대축일을 뜻깊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 절제와 극기, 기도에 힘쓰는 기간인 사순시기에 특히 요구되는 신앙행위로 ‘피정과 묵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피정(避靜, retreat)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는 신심행위로 정의된다. 피정의 장소로는 보통 성당이나 수도원,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된다.
그렇다면 신앙선조들은 사순시기에 어떻게 피정과 묵상을 했을지 궁금해진다. 박해시대라면 지금처럼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마땅한 피정 장소도 없었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여러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부터가 큰 위험이 따랐다.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피정과 묵상을 보여주는 명확한 문헌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보면 순교자들이 평상시는 물론 특히 사순시기에 초인적이라 할 정도로 단식과 금육을 철저히 지켰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런 사실에서 신앙 선조들이 사순시기에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대와는 방법과 장소는 다를 수 있지만 피정과 묵상이 강렬하게 이뤄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는 한글 최초 성경인 「성경직해광익」을 “교우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성인의 수양방법인 피정을 일상화하기 위한 책”이라고 말했다. 「성경광익」에는 피정 방식에 대해 “매일 3차례 묵상하며 매번 모두 사각(四刻, 1각은 15분, 4각은 1시간)씩 하는데 처음 1각은 준비하고 다음 1각은 자기가 묵상해야 할 묵상 자료를 준비하여 나머지 시간에 묵상하며 그것이 끝나면 다시 1시간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는 해설이 나온다.
김 신부는 “기록상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피정을 한 인물은 정약전으로 이후 사순시기에 굴속이나 산중에 들어가 개인 피정을 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며 “피정이 한국교회에서 공식화 된 것은 1910년대 교구 차원에서 공소회장들을 모아 연 1회 피정을 실시하면서부터”라고 설명했다. 1920년대에는 피정에 참석 못하는 공소 회장의 경우 불참 사유를 교구에 보고하도록 해 피정을 제도화했다.
지금은 매해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새로운 묵상서적들이 나온다.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절에도 묵상서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압수된 천주교 서적 목록에는 「묵상지장(默想指掌)」, 「묵상(默想)」 등 한문본 묵상서들과 「 믁샹지쟝」, 「묵샹졔의」와 같은 한글로 된 묵상서들이 발견됐다. 「묵상지장」은 “묵상이란 하느님과 마주하여 하느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요긴한 것을 기도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친밀하게 내왕함이 마치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묵상법을 가르쳤다.
이 외에도 한국교회사연구소에는 「신명초행」, 「선생복종정노」, 「구령요의」, 「성상경」등 주로 개항기 전후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묵상서들이 다수 소장돼 있다. 박해시대에도 사순시기를 사는 신자들에게 묵상이 중요 신심행위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광(이냐시오) 교수(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집중적인 묵상을 이끌어 주는 책자로 한글 필사본 「묵상신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 책의 제3권과 제4권에서는 사순시기 전후 7주간에 걸쳐 예수의 수난과 고뇌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묵상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묵상신공」이 실제로 얼마나 읽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묵상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김정숙(소화데레사) 교수(영남대 국사학과)는 1907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국채보상운동이 그해 사순시기에 천주교 신자인 서상돈과 정규옥을 중심으로 시작된 배경을 “절제된 삶을 살겠다는 천주교 신자들의 묵상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국채보상운동은 천주교 신자가 발의했고 여기에 천주교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해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천주교 교우촌 44곳, 사제 2명, 신자 600여 명이 국채보상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김정숙 교수는 당시의 천주교 교세를 감안하면 천주교 신자들의 참여도가 매우 높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김진소 신부는 사순시기가 갖는 중요성은 인간의 본능을 극복하는 ‘수행생활의 일상화’에서 찾아야 하지만 현재의 한국교회에는 참 의미의 피정과 묵상이 사라졌다고 지적하면서 “「성경직해광익」을 통째로 외웠던 선조들을 본받고 불교에서 선승들이 동안거, 하안거를 하는 것처럼 천주교도 본래 의미의 사순시기 피정과 묵상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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