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흥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은 사순시기를 맞아 지난 5일부터 4월 13일까지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를 진행 중이다. 본당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매일 저녁 8시40분~10시40분까지 2시간씩 기도와 묵상을 한다.
주수욱 주임신부는 “신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 제가 시키거나 권유한 적도 없고 신부인 저도 신자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참여할 뿐”이라고 말했다. 시흥동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저녁 8시40분~9시10분 십자가의 길, 9시20분~9시30분 찬미, 9시30분~9시40분 자비심의 기도와 지향 기도, 9시40분~10시10분 묵주기도와 103위 성인 호칭기도, 마지막으로 10시10분~10시40분까지 30분간 묵상과 강복으로 구성된다. 마지막 순서로 묵상을 하는 것은 그날 하루의 삶과 기도를 정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 위해서다.
사순시기 4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신자들이 성전에 모여 2시간씩 기도와 묵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시흥동본당의 사순시기 40일 기도회가 본당 신자들에게는 ‘일상’이라는 점이다. 기도회를 주관하는 본당 성령쇄신봉사회 이희숙(루치아) 회장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20년 이상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온 우리 본당의 전통”이라며 “사순시기 기도와 묵상에서 한 해를 사는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주수욱 신부는 본당 신자들을 ‘아나윔’(Anawim)이라고 표현했다. 아나윔은 자신의 일상을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하느님만을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주 신부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후 다시 하느님을 찾아 이스라엘로 기어이 돌아온 유다인들과 같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하느님께 의지하는 시흥동본당 신자들은 ‘이 시대의 아나윔’이라고 설명했다. 시흥동본당의 사순시기 기도와 묵상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원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하다.
목숨까지 바쳐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의 믿음에 비해 현대 신앙인들의 믿음은 연약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주 신부는 무한경쟁이 소용돌이치는 후기 산업사회와 최첨단 IT 사회인 한국에서 사순시기 40일 기도와 묵상에 매일 같이 신자들이 모인다는 사실은 순교자들의 믿음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과거 박해시대 목숨을 바치는 것이 순교였다면 지금은 겸손하고 소박하게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이 순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희숙 회장은 사순시기 40일 기도회에서 마지막 묵상 전에 103위 성인호칭 기도를 바치는 이유를 “순교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 특히 사순시기에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시흥동본당 사순시기 40일 기도회는 전 신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는 못한다. 주 신부는 “다들 바쁘게 사는 도시 본당 신자들이 기도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이들이 많고 몸은 다른 곳에 있어도 마음만은 성전에 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앞에 두고 지긋이 눈을 감은 시흥동본당 신자들의 묵상에는 고난의 시기일수록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다소곳한 염원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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