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두 번 가는 남자들이 간혹 있다. 취업하기 어려운 청년들이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고 병사로 제대해 장교나 부사관으로 재입대 하거나 장교로 단기 복무 후 부사관으로 다시 군문에 들어서는 사례도 종종 본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계를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군대 두 번 가는 남자들이 또 있다. 바로 사제들이다. 사제들이 군대에 두 번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군종사제라 부른다. 전국을 교구로 하는 군종교구에서 육해공을 막론하고 단 1명의 장병이라도 그들을 원하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는 이들이 바로 군종사제들이다.
군종사제는 군인이면서 사제라는 두 가지 신분과 정체성을 지니기에 군종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국방부가 정한 ‘군종장교’ 임관절차도 여타 장교들과 마찬가지로 거쳐야 하고 군종교구 사제로서 군종교구장을 정점으로 하는 교구 사제단의 일원이 되는 절차도 필요하다.
2014년에는 새로운 군종사제 12명이 탄생한다. 서울(1명), 대구(1명), 전주(1명), 대전(1명), 인천(2명), 수원(3명), 부산(1명), 청주(1명), 마산(1명) 등 전국 9개 교구에서 모였다.
12명의 신임 군종사제들과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교구청 국실장 신부들이 6~7일 서울 합정동 꾸르실료 회관에서 입영 전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 이날은 춘삼월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꽃샘추위가 몰아닥쳐 눈발이 날렸지만 젊고 혈기가 넘치는 신임 군종사제들의 뜨거운 숨결로 꾸르실료 회관은 후끈거렸다.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출발을 준비하는 긴장감도 없지 않았다.
6일 오후 2시 오리엔테이션의 본 프로그램 시작을 앞두고 유수일 주교와 신임 군종사제들은 휴게실에서 담소를 나눴다. 유 주교는 “신부님들 만나뵙게 돼 반갑습니다”라며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건넸다.
2시가 되자 오리엔테이션 전체 진행을 맡은 교구 교육국장 유현상 신부(충호본당 주임)가 “이제 슬슬 들어가서 자리 잡읍시다”라고 말하자 신임 군종사제들은 강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교구 국실장 신부들이 환영의 인사부터 전했다. 전산실장 최장민 신부(방패본당 주임)는 “여러분들이 군종교구 신부가 되려고 신체검사도 하고 면접도 하고 여러 단계를 밟아왔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지 말고 온 몸으로 부딪치세요. 저도 선배로서 같이 부딪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이 몸으로 부딪치자는 말을 들은 신임 군종사제들의 얼굴에 ‘이제 정말 군종사제가 되는구나’ 하는 감흥의 빛이 떠올랐다.
사목국장 김성현 신부(화랑대본당 주임)가 ‘군종사제란 누구인가?’를 주제로 진지한 첫 강의를 맡았다. 김 신부는 신자에게는 누구나 자기가 짊어진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고 사제의 십자가는 사제라는 사실이라고 운을 뗀 후 “제가 이등병 때 힘들게 생활하면서 주일마다 뵙는 군종신부님에게 너무나 감사해서 제대하고 신부가 되면 무조건 군종신부를 지원할 것을 결심했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어 김 신부는 “여러분이 각 교구 본당에 있을 때는 신자만 만났고 대접 받으면서 지냈지만 군대는 80~90%가 비신자고 계급구조가 지배하는 곳이어서 ‘바닥’에 떨어지는 체험도 하게 된다”며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군중을 만날 때의 느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의 강의가 끝나고 육해공 각 군을 대표해 육군 현광섭 신부(육군본부), 해군 주용민 신부(해군중앙본당 주임), 공군 나광남 신부(삼위일체본당 주임)가 각 군의 편제와 본당 분포, 사목 특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현광섭 신부는 민간인 성직자 포함 개신교는 육군에 880명, 불교는 300명의 성직자가 활동하고 있지만 천주교는 58명의 신부만이 사목하는데도 천주교 신자 비율은 18%나 된다는 현황을 설명하고 “여러분이 2%만 더 노력하면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리라 본다”고 강조했다.
군인에게도 사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군종교구에 자원했다는 석현일 신부(청주교구)는 첫날 강의를 듣고 “서로 다른 교구에서 모인 새로운 동기 신부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친해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오리엔테이션 참가 소감을 밝혔다.
유수일 주교는 오리엔테이션 둘째 날 신임 군종사제들을 만나 “군복음화의 일꾼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마르코복음 2장 1~12절(‘중풍병자를 고치시다’)을 인용해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갖고 형제애로써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다 준 이웃들처럼 단순하면서도 철저한 믿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신임 군종사제들은 4월 22일 충북 괴산 학생군사학교(문무대)에 입소해 9주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6월 27일 임관과 함께 군종교구 임지로 발령받아 군종사제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출신교구에서 군종교구로 소속이 바뀌는 시점은 4월 22일 문무대 입소일이다.
군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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