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학군사관(ROTC) 동계훈련이 끝나자 군의사관 후보생들의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평균 나이 서른 이상인 대한민국 남성이지만 머리를 빡빡 밀고 가족들의 걱정 어린 눈길과 배웅 속에 입소하는 모습은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3년 전 똑같이 긴장된 모습으로 입소했던 제 모습과 겹쳐지지만 전역을 두 달 앞둔 자의 여유 탓인지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흐릅니다. 사실 병원에서 밤낮 구분 없이 일하던 수련 생활에 비해 군의관 생활은 다소 따분할 수 있지만, 의사로서의 직무만 수행하면 됐던 병원에 비해 의사인 동시에 군인으로서의 역할도 해내야 하는 군생활은 서른 넘은 나이에 적응하기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역 후 다시 시작될 병원생활을 떠올리니 저와는 반대로 이제 막 병원 생활을 마치고 입소하는 그들이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3년간 군병원이 아닌 일선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보다 좋은 여건을 가진 병원에서 전문 과목을 진료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저 역시 처음에는 제 상황이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다소 부족한 진료여건이 주는 의외의 선물이 있었습니다. 먼저 진료실을 찾아온 환자와 더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진단장비가 부족한 상황이 주는 당연한 결과로 의사로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오히려 환자들의 만족도는 점점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경청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지요.
두 번째 선물은 다른 군의관들의 진료 모습을 통해 부족한 제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병원에서 수련 시절,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환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못 해주는 경우도 많았고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익숙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더 바빴을 정형외과, 외과 군의관들이 친절하고도 상세한 설명과 함께 환자를 대하는 것을 보고는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들어주는 것 이상의 무언가,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은 저에게 그동안 환자를 대하는 것은 그저 의사로서의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보면서도 잔뜩 쌓여 있는 업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환자를 대했음을, 그리고 솔직히 그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기에는 아직 힘듭니다만 적어도 진료실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제가 좋아하는 저희 본당 ‘신부님’ 대하듯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곧 전역을 하고 대학병원으로 돌아가 전문의로서 환자를 진료하게 됩니다. 38개월간 전문과목 진료를 보지 못해 비뇨기과전문의로서의 감(感)은 조금 떨어졌을지 모릅니다만 의사로서의 감(感)은 확실히 잡고 갑니다.
힘들다고 불평했던 순간에 제게 부족했던 더 큰 부분을 채워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