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삶을 돌아보면 여러 차례 실로암에서 눈이 뜨이는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고 또 다시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을 거듭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느님께 멀어졌다가 당신의 자비하심으로 눈을 뜨고 주님을 믿게 되기를 반복하리라 믿습니다.
스물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20대가 겪게 되는 삶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저도 나름 겪었습니다. 공부, 연애, 운동, 성당활동 등 답을 찾고자 부단히도 노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2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이리 저리 부딪히고 상처가 난 저에게 하느님께서 오셨습니다. 눈 똑바로 뜨고 바른 길 갈 수 있게 제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20대 중반에 저는 ‘사제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회 성소자가 되었습니다.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2년여 한 뒤에 저는 입회를 했습니다. 20대 중반 어느 날 제게 오셨던 예수님을 잊지 않고 줄곧 수도 사제의 성소를 생각했습니다. 눈이 멀어 이리저리 헤매던 제게 빛을 비춰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서른에 예수회라는 수도회에 입회를 했습니다. 수도생활을 통해 더 눈이 맑아지고, 멀리, 깊게 보며 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 눈은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신학 공부를 외국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외국어 학원을 다녔습니다. 그곳 학생들은 제가 가톨릭 수사인지 몰랐습니다. 말을 해도 뭔지 몰랐습니다. 언제 결혼하냐고 묻곤 했습니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가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처지는 것입니다. 외국어 공부가 힘들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성찰을 해보니 6년 동안 교회 울타리 안에서 ‘수사님’이란 말과 수녀님과 신자 분들의 환대에 빠져 제 본분을 망각했습니다. 제가 잘나서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에 깁스를 엄청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아무도 제게 ‘수사님’이라고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머리로는 겸손하고 가난한 수도자로 살아야지 했지만, 몸과 마음은 6년 동안 부유함에 젖어 있었습니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외국 유학을 준비하며 하느님께서는 다시 제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다시 알아듣고, 주님을 믿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마흔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부제품을 앞두고 한 달 동안 예수회 사제직에 대한 워크숍을 했습니다. 전반부에는 예수회원과 함께 일하는 수녀님, 신자 분들께서 오셔서 당신들의 체험을 나눠주셨습니다. 당신들이 바라는 예수회 사제에 대해서 진심을 담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여섯 나라에서 온 우리 수사들은 말씀을 듣고 각자 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어려움들, 희망들을 또 나눴습니다. 그렇게 2주가 끝났을 때, 저는 무척 무서웠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어 제대에, 강론대에 선다는 것이 너무너무 바라던 일이었는데, 그때는 너무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가 사제가 되어 신자들 앞에 서는구나, 내가 그만큼 역량이 되나? 준비가 되었나?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저를 하느님께서는 꼭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후반부에는 피정을 했는데, 피정 동안 불안하고 두려웠던 제 마음을 주님께서는 완전히 녹여주셨습니다. 제 과거의 순간 순간을 보여주시며 저를 얼마나 아끼셨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두려움에 싸여 눈이 멀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빛을 보여주셨고, 저는 제 삶 구석구석을 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모든 지점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믿습니다. 그 모든 시간에 당신께서는 제 눈을 열어 당신을 보도록 빛과 사랑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눈먼 저를 몇 번이고 뜨게 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어리석음, 게으름, 죄 때문에 눈이 멀 때마다 계속 눈뜰 수 있게 은총 허락하소서!
김동일 신부는 2003년 예수회 입회,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필리핀 마닐라 LST(Loyola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예수회 수련원 부수련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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